여수(麗水) 충무공 학익진과 통제영의 도시
여수는 아름다운 물길의 도시 입니다.
여수는 성웅 이순신 장군의 통제영(統制營)이 있는 도시 입니다.
성스럽다는 표현은 속세를 뛰어 넘거나, 평범한 인격 및 능력을 초월한 위인을 일컬을 때 사용합니다.
임금이 성스러우면 성군이라고 합니다. 세종 대왕을 일컬을 때 성군 세종대왕님 이라고 합니다.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셨습니다. 세계 역사상 어느 나라 왕도 이루지 못한 『제 뜻을 문자로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 백성을 위한 나라의 말씀』을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발성 기관을 이용하여, 소리 나는 대로의 언어』를 발명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어 발성 방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한글은 디지털 AI 시대에 가장 잘 들어 맞는 언어입니다 그리고 조선조 519년 중에 가장 빼어난 황금 통치 시기를 이루어 내셨습니다. 집현전에서는 학자들이 문화를 창달하고, 명나라와의 국경에서는 6진을 떨쳤습니다. 측우기, 해시계와 천문 관측기 등 과학 문명도 이루어 내셨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성웅 이순신 장군님 이라고 부릅니다. 23전 23승의 승리를 거두신 불멸의 전적을 이루어 내셨습니다. 영국의 해군 영웅 닐슨 제독도 이순신 장군님의 전적을 칭찬했습니다.
여수를 보면 그 지형이 학익진과 흡사합니다. 그 지형을 일일이 살펴보고 전략을 구상하셨다고 합니다. 성웅께서는 여수를 시작으로 노량, 명량, 한산도, 동래에 이르기까지 남해안 구석구석을 두루 살펴보시고 전략을 구상하여 임진왜란 수전에서 23전 23승을 거두신 것입니다.
성웅(聖雄)이라는 호칭은 인격도 우수하시지만, 왜군 대비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선 수군의 전투력을 탁월한 전략과 전술로 승리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에 붙여진 호칭입니다. 국난을 이겨 내시려는 투철한 책임감, 백성 사랑, 절제, 학문의 대가, 용기, 지혜와 충성으로 형성된 전인적인 품성 등 탁월한 능력과 고매한 인격을 두루 갖춘 영웅이시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여수는 이순신 장군의 도시 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명소는 단연 진남관 입니다. 1591년 임진왜란 발발 1년전부터 왜란이 터진 1592년~1598년 까지 생애의 가장 혁혁한 전공을 세우신 8년을 여수에서 보내셨습니다.
전라 좌수사로서 여수에 좌수영을 설치하고 거북선을 만들어 출정 시켰습니다. 판옥선과 학익진의 본거지 입니다. 여수시 지형은 가운데 여수시 도심, 좌 화양면 우 돌산도의 학익진(鶴翼陣)을 펼치고 있습니다.

1591년부터 1598년까지 전라좌수사와 삼도 수군통제사로서 좌수영과통제영을 설치하였습니다. 그 중심에 진남관이 있습니다.
진남관(鎭南館)은 『남쪽의 왜적을 진압하여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소대는 수군 훈련을 독려하고 작전 계획을 세우며 군령을 내렸던 장소입니다. 여수 선소는 거북선과 판옥선을 건조하고 정비를 했던 곳입니다. 충민사는 이순신 장군님을 제향(祭享)한 사당입니다. 제향은 매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신 장군님을 그리는 나라의 제사 입니다.
여수의 유명한 관광지를 알아봅니다.
여수 시청은 학익진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뒤에는 율촌면, 소라면 상일동 등이 있습니다. 그 앞에 장도가 있습니다. 장도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섬입니다. 하루에 두번씩 육지에서 장도 가는 길이 물속에 잠깁니다. 잠기기 전에 장도로 갔다가 잠기기 직전에 육지로 나와야 합니다.
여수의 중심에서 구봉산을 넘으면 진남관과 이순신 광장이 나옵니다. 그 옆에 오동도가 있습니다. 오동도에서 돌산 공원까지 케이블카가 운행중 입니다. 여수 시를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 옆에 여수세계박람회장이 있습니다.
여수는 충무공의 수군 통제영의 출발점입니다. 초기에 전라좌수사로서 좌수영을 설치하여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 후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여수에 통제영을 설치하고, 이어서 통영으로 옮겨서 남해안 전체 수군을 통제하신 것입니다. 여수에서 통영을 거쳐 동래를 아우르는 삼도수군통제사입니다.
23전 23승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삼 대첩을 설명합니다. 한산도 대첩, 명량 대첩과 노량 해전입니다.
제1 대첩 — 한산도 대첩
여수 이순신 장군 광장에 있는 거북선 모형 속을 들어가 보면, 그 속에서 화포, 총탄과 지휘관 및 수군 모형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육전에서 조선의 화승총은 왜놈 조총에게 뒤졌지만, 수전의 화포는 왜놈의 것보다 우수했던 것입니다. 한산도 대첩의 승리는 왜군의 해상 보급로를 막히게 하여서 수륙병진 전략에 상당한 차질을 주었습니다. 육전에서 왜군이 파죽지세로 평양성까지 쳐 올라 왔지만, 그 이상 더 북진하지 못했던 주된 이유가 바로 한산도 대첩에 의한 전쟁 무기와 물자의 공급 차질에 기인한 것입니다.
제2대첩 - 명량대첩
『저에게는 아직도 13척의 함선이 있습니다』 라는 유명한 말씀을 남기신 성웅께서는, 1척의 함선을 더 제작하여 13척으로 왜놈 수군 133척과 대적하였습니다. 울돌목 진도와 해남 사이의 조류가 매우 빠르고 물길이 아주 얕은 지형을 이용하여, 기동성이 빠른 판옥선으로 대승을 거두신 것입니다. 지금도 울돌목 물길은 정오 무렵이 되면 바닷물이 급하게 빠지면서 물길이 얕아져 배가 통행할 수가 없습니다. 13척을 만만이 본 왜놈 함선이 정오 무렵 조선 수군을 공격하다가, 물길이 얕아지니 오도가도 못하고 궤멸 당했던 것입니다.
제3대첩 - 노량대첩
왜놈 우두머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면서 왜군은 철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해도와 하동 사이의 노량 해협에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과 명나라 진린의 연합 함대가, 도망가려는 왜군을 크게 이긴 노량 해전 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웅 이순신 장군께서는 적의 총탄에 맞아서 전사하셨습니다. 『완아! 나의 사망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는 말씀을 남기시고, 죽는 그 순간까지 나라를 사랑하신 성웅께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충무공의 학익진과 여수의 물길 얘기는 더하고 싶지만 여기서 끝냅니다. 마음이 아려 와서 이상 더 쓸 수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