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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사랑한 미국인” 헐버트, 고향 美 버몬트에 기념비·흉상 세워졌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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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특사로 미국까지 건너가 일제 침략 알려…버몬트주 ‘헐버트-한국의 날’ 제정도 추진
3일 버몬트주 뉴헤이븐에 세워진 헐버트 박사 기념비 및 흉상. [사진 제공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3일 버몬트주 뉴헤이븐에 세워진 헐버트 박사 기념비 및 흉상. [사진 제공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Homer B. Hulbert·1863~1949) 박사를 기리는 기념비와 흉상이 그의 고향인 미국 버몬트주 뉴헤이븐에 세워졌다. 1886년 조선에 온 지 140년 만에 고향 땅에 그의 한국 사랑과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알리는 기념물이 마련된 것이다.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버몬트주 뉴헤이븐 빌리지그린에서 ‘헐버트 기념비 및 흉상’ 제막식을 열었다. 기념물이 들어선 곳은 헐버트가 어린 시절 다녔던 뉴헤이븐회중교회의 옛 터로, 그의 아버지가 이 교회의 제2대 목사를 지낸 곳이기도 하다.

 

높이 2m의 기념비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헐버트의 주요 업적과 어록을 새겼다. 청동 흉상은 권치규 작가가 재능기부로 제작했으며, 기념비와 흉상에는 헐버트의 고향인 버몬트에서 나온 석재가 사용됐다. 건립 비용은 정부 지원 없이 기념사업회의 자체 재원과 후원금으로 마련됐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개천절인 3일(현지시간) 뉴헤이븐 빌리지그린에서 ‘헐버트 기념비 및 흉상’ 제막식을 열었다고 4일 밝혔다. [사진 제공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개천절인 3일(현지시간) 뉴헤이븐 빌리지그린에서 ‘헐버트 기념비 및 흉상’ 제막식을 열었다고 4일 밝혔다. [사진 제공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제막식에는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과 곽정열 주보스턴 총영사관 부총영사, 루스 하디 버몬트주 상원의원, 주빌리 맥길 주 하원의원 등 120여 명이 참석했다. 헐버트의 증손자 킴벌 헐버트를 비롯한 후손 6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헐버트와 한국의 인연은 1886년 시작됐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학교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조선에 들어와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해외에 알리는 한편, 일제의 침략과 식민정책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힘썼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을 앞두고 고종의 특사로 미국에 파견돼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고종의 친서를 전달하려 했다. 외국인이었지만 조선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한국의 독립과 자주권을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 인물이었다.

 

광복 후인 1949년, 헐버트는 대한민국 정부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입국한 지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기려 195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며, 2014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버몬트주에서는 이번 기념물 건립을 계기로 헐버트의 뜻을 더욱 널리 알리려는 움직임도 시작됐다. 루스 하디 주 상원의원은 한국과 버몬트주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헐버트-한국의 날’ 제정 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념비와 흉상을 버몬트주 역사 기념물로 지정하고 도로변에 안내 표식을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조선의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왔던 스물세 살의 청년은 훗날 고종의 특사가 되어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세상을 떠난 뒤에는 한국 땅에 묻혔고, 77년이 흐른 지금 그의 고향 버몬트에는 한국을 위해 살았던 그의 삶을 기억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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