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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뒷모습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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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람
평생을 가족보다 앞에서 온갖 비바람을 막아 주었던 사람, 이제는 그 느린 걸음에 우리의 보폭을 맞출 시간이다. 언제나 말보다 깊었던 사랑을 전해 준 아버지, 우리들의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어릴 적 아버지는 언제나 큰 사람이었다. 넓은 어깨와 단단한 손, 무엇이든 해결할 것 같은 든든한 모습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아버지의 등 뒤에 서 있으면 두렵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넓은 등이 가족이라는 무게를 온전히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하루는 늘 가족보다 먼저 시작되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에 집을 나서고, 하루의 피로가 골목마다 내려앉은 뒤에야 돌아왔다. 힘겨운 날에도 내색하지 않았고 자신의 몫을 묵묵히 감당했다. 좋은 것은 자식에게 먼저 내어주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뒤로 미뤘다. 그렇게 아버지의 젊음은 가족의 시간 속으로 조금씩 흘러갔다.

 

말보다 깊었던 사랑

 

아버지 세대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묵묵히 일하는 것으로 마음을 전했고, 걱정하면서도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자식들은 때로 그 침묵을 무관심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자신도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서야 알게 된다. 아버지의 침묵 속에는 가족을 향한 깊은 책임과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앞서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한때 그렇게 넓어 보였던 어깨가 조금 굽어 있고, 걸음도 예전처럼 힘차지 않다. 희끗해진 머리와 천천히 옮겨지는 발걸음에서 지나온 세월이 보인다. 자식이 자라는 동안 아버지는 늙어가고 있었다.

 

작아진 등 뒤에서 보이는 세월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작아지고 나서야 그의 삶은 더 크게 보인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며 잠들지 못했던 밤, 자식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욕심을 접었던 날들, 힘들어도 가족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으려 했던 시간이 뒤늦게 마음속으로 밀려온다.

 

아버지도 한때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며 자신만의 인생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의 꿈보다 가족의 꿈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자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자리에서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그래서 아버지의 뒷모습은 쓸쓸하면서도 아름답다. 그 안에는 한 사람이 가족을 위해 견뎌낸 수많은 계절이 겹겹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랐지만, 정작 아버지라는 사람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그 뒷모습이 작아진 뒤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 등이 더 굽기 전에 그 걸음이 더 느려지기 전에 이제는 우리가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

 

평생 가족보다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었던 사람. 이제는 그 느린 걸음에 우리의 보폭을 맞출 시간이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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