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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만화 ‘검정고무신’ 저작권 분쟁, 2심서 유족 완전 승소

산타뉴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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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우영 작가의 억울함 뒤늦게 풀려
  검정 고무신 2 (2006~2007, 엠파스 뉴스) [사진제공 나무위키]
검정 고무신 2 (2006~2007, 엠파스 뉴스) [사진제공 나무위키]

■ 한국인의 추억 속 만화, 그러나 창작자는 외로웠다

 

1990년대, 온 가족이 함께 웃으며 읽던 국민 만화 ‘검정고무신’. 서민 가정의 소소한 일상을 그려낸 이 작품은 한국 만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명성과는 달리, 창작자인 고(故) 이우영 작가의 삶은 험난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출판사와의 불공정 계약에 묶여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고, 그 고통은 결국 생애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혔습니다.

고 이우영 작가 [사진제공 나무위키]
고 이우영 작가 [사진제공 나무위키]

■ 불공정 계약의 그림자

 

이우영 작가와 출판사 간 계약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체결된 계약에는 원저작물뿐 아니라 2차적 사업권까지 출판사가 독점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계약 기간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수익 배분 또한 불공정했습니다. 출판사가 55% 이상을 가져가는 구조였고, 원작자와 공동작가가 모두 합쳐도 출판사의 몫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최소한의 보상조차 받기 어려운 구조였던 것입니다.

 

이 작가는 계약 내용을 깊이 이해하기 어려웠고, 생계와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계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불공정 구조의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게 다가왔습니다.

 

고 이우영작가의 아내가 만화를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 나무위키 동영상]
고 이우영작가의 아내가 만화를 완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 나무위키 동영상]

■ 알지 못한 사이, 작품은 상품으로

 

2015년, 이 작가는 TV 애니메이션 4기가 방영되는 것을 우연히 접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과 아내가 애니메이션 제작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에도 검정고무신 캐릭터는 패스트푸드점 장난감, 마트 상품, 각종 광고와 행사에까지 등장했습니다.

 

정작 원작자인 그는 수익 배분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최소한의 몫만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작가는 계약의 불합리성을 공론화했지만, 출판사는 이를 부인하며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 1심의 반쪽 승소, 그러나 아쉬움 남겨

 

2023년 11월, 서울중앙지법은 유족에게 저작권을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보지는 않았고, 오히려 일부 기간 동안의 저작권 침해 책임을 물어 유족에게 손해배상까지 명령했습니다.

창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계약의 불공정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못한 이 판결은, 많은 이들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겼습니다.

 

■ 2심 판결, 진정한 의미의 정의 회복

 

이번 2심 판결은 상황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계약 효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계약 전면 무효를 선언했습니다. 또한 출판사 측이 더 이상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고, 유족에게 손해배상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민법상 당사자의 경솔이나 궁박 등으로 현저히 공정을 잃은 계약은 무효”라는 원칙을 들어, 이번 사건의 본질을 ‘불공정 계약’으로 규정했습니다. 늦었지만 법원이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준 셈입니다.

 

■ 고통 속에서 떠난 작가, 남겨진 질문들

 

문제는 이 정의가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이우영 작가는 소송이 이어지는 동안 경제적·정신적 압박에 시달렸고, 결국 2023년 3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작품을 지켜내지 못한 채, 억울함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이 사실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많은 이들이 “창작자가 작품보다 먼저 사라지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만화가의 권리를 되찾아 준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는 사건입니다.

 

1. 창작자 권익 보호 강화

불공정 계약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저작권 계약 시 법률 지원 시스템 구축

 

2. 출판·콘텐츠 업계의 윤리 확립

단기적 수익보다 창작자와의 동반 성장을 우선시

투명한 계약과 공정한 수익 배분 구조 정착

 

3. 사회적 인식 개선

창작자를 단순한 공급자가 아니라 문화 자산의 생산자로 존중

독자·시청자 역시 창작자의 권리 보호에 관심 가져야 함

 

■ 기억해야 할 이름, 이우영

 

‘검정고무신’은 단순한 만화가 아닙니다. 시대의 웃음과 눈물을 함께 기록한 한국인의 집단 기억입니다. 그러나 그 명성 뒤에는 끝내 보호받지 못했던 한 창작자의 슬픈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이번 판결은 뒤늦게나마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었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를 남겼습니다. 앞으로 또 다른 이우영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는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가 남긴 작품과 웃음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고인을 향한 진정한 애도이자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일 것입니다.
 

성연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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