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원의 화가 이대원 70년의 발자취 -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빛으로 피어난 한국의 자연
“이대원 70년 예술”
작고 후 첫 대규모 회고전 - 덕수궁에서 다시 만나는 ‘농원의 화가’
[편집자주] 한국 근현대 구상회화를 대표하는 거장 이대원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고 있습니다.한평생 자연을 바라보며 한국적 색채와 생명의 리듬을 화폭에 담아낸 그의 70년 예술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법학도에서 한국 구상회화의 거장으로
이대원(1921~2005)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 화가다.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지만 정규 미술대학이 아닌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10대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결국 평생 붓을 놓지 않는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와 학장, 총장을 지내며 미술교육 발전에도 힘썼다. 교육자와 행정가로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주말이면 파주의 농원으로 돌아가 나무와 과수원, 연못과 들판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같은 풍경을 수십 년 동안 반복해서 바라보는 과정에서 그의 자연은 현실의 풍경을 넘어 독창적인 회화의 세계로 변해갔다.
수많은 색점이 만들어낸 생명의 리듬
이대원의 대표작인 ‘농원’과 ‘과수원’ 연작에는 그만의 강렬한 색채가 살아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화면은 무수한 점과 짧은 선, 붓질의 집합처럼 보이지만 한 걸음 물러서면 나무가 흔들리고 꽃이 피며 햇살이 쏟아지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의 작품은 서양의 인상주의나 점묘화를 연상시키면서도 그것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전통 회화의 운필과 자수, 나전칠기 등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색채 감각을 현대적인 유화 기법과 결합해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었다.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연에서 느낀 생명과 빛의 움직임을 색으로 번역한 것이다.
슬픔을 지나 마침내 발견한 빛
이번 전시의 제목인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대원의 그림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이기도 하다. 그의 화면에는 어둠보다 빛이, 절망보다 생명이 넘친다. 그것은 세상의 고통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과 가난,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내면서도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예술가의 의지였다.
계절이 지나면 꽃은 다시 피고, 빈 가지에는 또다시 열매가 맺힌다. 이대원은 평생 그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자연의 질서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한 폭의 풍경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긍정하는 힘을 만난다.
작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펼쳐진 이대원의 70년 화업은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예술이란 슬픔이 없는 세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도 끝내 빛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