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사과농사로 모은 5억, 순직한 아들의 이름으로…‘자랑스러운 군민상’ 김경수
![2024년 3월 12일 오전 대구 강북소방서에서 열린 ‘소방영웅 김기범 장학금 기탁식’ 행사 후 김경수(사진 오른쪽) 씨가 김조일 소방청 차장과 기념 촬영을 했던 모습. [사진제공 소방청]](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925/1790262431622_986491245.jpg)
70년 동안 사과농사를 지어 모은 5억원을 순직한 외아들의 이름으로 내놓은 아버지가 있다. 고(故) 김기범 소방교의 아버지 김경수(84) 씨다. 대구 군위군은 지난 21일 군민상심의위원회를 열고 김 씨를 올해 ‘자랑스러운 군민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김 씨는 2024년 평생 모은 5억원을 소방당국에 기탁했다. 기부금은 ‘김기범 장학사업’의 재원이 돼 순직 소방공무원 자녀와 군위군 전몰군경 유족의 후손들을 지원하는 데 쓰이고 있다.
5억원에는 한 농부가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김 씨는 어린 시절부터 과수원에서 일했고, 70년 가까이 사과농사를 지으며 돈을 모았다. 담배 한 갑 외에는 좀처럼 돈을 쓰지 않고 옷도 아껴 입으며 마련한 재산이었다.
그 돈에 아들의 이름을 붙인 데에는 1998년 10월 1일의 기억이 있다.
당시 26세였던 김기범 소방교는 태풍 ‘예니’로 대구·경북에 폭우가 쏟아지자 금호강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 소방관이 된 지 2년째였던 그는 구조활동 도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했다.
아들이 집을 나서기 전날에도 비는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김 소방교는 다음 날 근무를 위해 군위 본가를 나서며 아버지에게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가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출근하라고 했다.
그것이 부자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됐다.
26년이 지난 뒤에도 김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가지 말라고 할 걸 참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김기범 소방교는 부모에게 살뜰한 아들이었다. 학창 시절 받은 용돈을 쓰지 않고 모아뒀다가 어머니에게 차비로 돌려줬고, 소방관이 된 뒤에는 월급을 아껴 1년치 저축액을 부모에게 건네기도 했다.
아들을 잃은 뒤 김 씨에게 남은 사진은 많지 않았다.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힘들어 상당수를 태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식과 군 복무 시절, 소방관 임용 뒤 처음 찍은 사진 등 몇 장만 간직했다.
대신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남기는 방법을 택했다.
평생 일군 재산 5억원을 기탁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소방영웅 김기범’의 이름을 장학사업에 붙였다. 아들의 생일인 2월 20일을 기념해 장학금을 전달하도록 한 것도 아버지의 뜻이었다.
김 씨는 당시 기부 이유를 이야기하며 “내 이야기보다 아들의 이름이 오래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군위군은 이러한 나눔의 공로를 인정해 김 씨를 올해 ‘자랑스러운 군민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군민상은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복지 향상 등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한다.
김 씨와 함께 대한파크골프협회장 홍석주(77) 씨와 재부산삼국유사면향우회장 오근석(66) 씨도 수상자로 선정됐다.
홍 씨는 파크골프 대중화와 생활체육 활성화에 힘써왔으며, 경남·경북 산불 피해 복구와 이재민 지원을 위해 개인 성금 1천만원을 기부했다. 오 씨는 고향의 어려운 이웃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홀로 사는 어르신의 집을 수리하는 등 꾸준히 봉사해왔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8일 ‘제50회 군위군민체육대회’에서 열린다.
26년 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출근길을 배웅했던 스물여섯 살 아들은 이제 ‘김기범 장학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그리고 70년 사과농사로 모은 아버지의 5억원은 순직 소방관 자녀들의 학업을 돕는 장학금으로 쓰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