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길

우리는 과연 문화 선진국인가
K컬처는 세계를 사로잡았지만 - 문화의 진짜 수준은 우리의 일상에서 드러난다
편집자주 | K팝과 드라마, 영화와 웹툰이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한국은 이제 문화를 수입하던 나라에서 문화를 만들어 세계로 보내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문화 강국’과 ‘문화 선진국’은 같은 말일까. 문화의 진정한 수준은 화려한 무대뿐 아니라 거리와 지하철, 학교와 직장,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산타뉴스는 오늘 우리 사회에 묻는다. 우리는 과연 문화 선진국인가.
세계가 즐기는 K컬처
한국 문화콘텐츠의 위상은 분명 크게 높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은 약 157조4천억 원, 수출액은 약 140억8천만 달러에 달했다. 음악·게임·방송·웹툰 등 다양한 분야가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공연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2025년 국내 공연시장 티켓 판매액은 1조7326억 원으로 전년보다 18.8% 증가했고, 공연 관람권 예매도 약 2478만 건에 이르렀다.
박물관은 2025년 918곳, 미술관은 290곳으로 집계됐고, 공공도서관도 2024년 1296곳까지 늘어났다. 숫자만 놓고 보면 한국은 분명 문화 강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문화는 ‘상품’만을 뜻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문화 선진국을 콘텐츠 수출액과 공연장 숫자만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문화는 유명 가수의 노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마음에도 있고, 장애인이 불편 없이 공연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시설에도 있다. 식당 종업원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아파트 층간소음을 줄이려는 노력, 운전 중 보행자를 기다려주는 몇 초에도 그 사회의 문화 수준이 담긴다.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으며 약자를 조롱하지 않고, 온라인에서도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 어쩌면 문화 선진국을 결정하는 것은 세계적인 스타의 숫자보다 이러한 평범한 시민들의 태도인지 모른다.
수도권과 지역, 세대 사이의 문화 격차
문화 향유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고르게 주어지는가도 돌아봐야 한다. 정부 역시 문화기반시설 확충과 지역 간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문화정책의 중요한 과제로 다루고 있다. 2025년 문화기반시설 총람은 도서관·박물관·미술관·생활문화센터·문예회관·지방문화원 등 전국의 문화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좋은 공연과 전시를 보기 위해 반드시 서울로 가야 하고, 경제적 여유에 따라 문화생활의 폭이 크게 달라진다면 문화 선진국이라는 이름에는 아직 채워야 할 공간이 남는다. 어린이와 청년, 장애인과 노인, 도시와 농어촌 주민 모두가 가까운 곳에서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보여주는 문화’에서 ‘살아가는 문화’로
진정한 문화 선진국은 거대한 공연장을 많이 가진 나라만을 뜻하지 않는다. 작은 도서관이 살아 있고, 동네 서점과 극장과 미술관이 시민들의 일상에 자리 잡으며, 예술가가 창작만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다.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품격 있어야 한다. 아이를 기다려주고, 노인의 느린 걸음을 재촉하지 않으며 장애인의 이동권을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고,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사회. 그것 역시 문화다.
K컬처는 이미 세계의 문을 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화려한 성공을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문화 강국은 세계인이 우리의 문화를 좋아하는 나라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 선진국은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나라다.
세계가 한국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시대를 넘어 세계가 한국인의 배려와 공동체 의식까지 닮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문화 선진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