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무한 경쟁 시대

치매 5,500만명 겨냥한 신약 전쟁 - ‘플라크 지우는 시대’ 다음은 무엇인가
전 세계 치매 환자는 5,500만~5,700만명 규모로 추정된다.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환자 수는 2050년 1억3,900만명까지 늘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 거대한 시장을 놓고 글로벌 제약사와 바이오텍의 신약 개발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치료 패러다임은 증상완화제 중심에서 병의 진행을 늦추는 질병수정치료제(DMT)로 이동하고 있다.
승부처는 초기 환자 — 승인·급여·인프라가 전쟁터
현재 경쟁의 중심에는 아밀로이드-베타(Aβ) 표적 항체치료제가 있다.
미국 FDA는 2024년 7월 일라이릴리의 도나네맙(제품명 키순라)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승인했고, 투여는 4주 간격 정맥주사(IV) 방식이다.
유럽에서는 2025년 4월 레카네맙(레켐비)이 조기 알츠하이머병에 대해 제한적 적응증으로 EU 판매허가를 받으며 유럽 첫 원인표적 치료 타이틀을 가져갔다.
다만 효과 만큼이나 안전성과 운영 역량이 승패를 가른다.
항체치료제의 대표적 부작용은 ARIA(뇌부종·미세출혈 등 영상 이상)로, 치료 전후 MRI 모니터링 체계가 필수다.
릴리는 2025년 7월 ARIA 위험을 낮추기 위한 키순라의 단계적 증량(타이트레이션) 투여 라벨 변경을 발표하며 안전성 관리 경쟁도 본격화했다.
결국 초기 환자 선별(아밀로이드 양성 확인)–투여–영상 모니터링–부작용 대응까지 포함한 치료 생태계구축이 신약 성패를 좌우하는 국면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경과 전문의는 ‘현장에서는 약 자체보다도 환자 선별 검사(PET·뇌척수액·혈액 바이오마커)와 반복 MRI, 주사실 인력·동선이 더 큰 장벽’이라며 ‘결국 급여 기준과 인프라 투자가 동시에 가야 치료가 확산된다’고 말했다.
파이프라인 138개 — ‘아밀로이드 이후’도 이미 시작
경쟁은 항체 2강에 멈추지 않는다.
2025년 기준 알츠하이머 임상 파이프라인 분석에 따르면 임상시험은 182건, 후보물질은 138개에 달한다(1상3상 포함). 타깃도 다변화된다. 아밀로이드 외에 타우(tau) 응집 억제, 신경염증·미세아교세포 조절, 시냅스 기능 회복, 대사·혈관 요인 개선, 유전자·세포 기반 접근 등이 동시에 전개된다. 플라크 제거로 몇 달수년의 시간을 벌었다면 다음 단계는 신경세포 손상 자체를 늦추거나 회복시키는 조합요법(콤비네이션)이라는 게 다수 연구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실제로 유럽 규제당국은 레켐비를 ApoE4 유전자 보유 정도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가하는 등 누가 더 안전하게 혜택을 보는가를 정교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신약 개발이 약물의 문제를 넘어 정밀의료(유전·바이오마커 기반 선별) 경쟁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한국, 도입은 빨라졌지만 자체 신약은 롱런이 관건
한국도 글로벌 흐름의 한복판에 들어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4년 5월 레카네맙(레켐비)을 경도인지장애(MCI) 및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치료에 대해 승인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현장에서는 △진단·모니터링 비용 부담 △치료 인프라 지역 격차 △급여·본인부담 기준의 불확실성 △부작용 대응 프로토콜 표준화 등이 확산의 병목으로 꼽힌다.
국내 기업의 신약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아리바이오는 경구용(먹는) 치료제 후보 AR1001의 글로벌 3상을 진행 중이며, 2026년 상반기 톱라인 결과를 목표로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젬백스앤카엘은 GV1001을 알츠하이머 적응증으로 개발 중이라고 공개하고 관련 임상도 등록돼 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항체 주사 치료는 인프라와 비용의 허들이 높다. 반면 경구제나 새로운 기전 약물이 성공하면 치료 접근성이 크게 바뀔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이 승부를 보려면 글로벌 3상 설계·규제 대응·기술이전(파트너링) 역량까지 포함한 사업개발(BD) 체력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1등 신약 보다 중요한 3가지
전문가들은 치매 신약 경쟁의 승부가 단일 약물의 1등이 아니라 세 가지 축에서 갈릴 것으로 본다.
첫째, 초기 진단의 대중화다.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가 표준 진료로 들어오면 환자 풀 자체가 재편된다.
둘째, 안전성 관리의 표준화다. ARIA 리스크를 낮추는 투약·모니터링 프로토콜이 촘촘할수록 실제 처방은 늘어난다.
셋째, 조합요법과 차세대 타깃이다. 파이프라인이 방대한 만큼, 향후 몇 년은 항체 이후의 타우·염증·시냅스 기반 약물들이 2라운드 경쟁을 열 가능성이 크다.
치매는 의료비·돌봄·노동력까지 뒤흔드는 국가 리스크이다.
5,500만 환자를 겨냥한 신약 레이스는 이제 막 본선에 들어섰다. 한국은 빠른 도입 경험을 발판으로 자체 파이프라인의 글로벌 임상 완주와 인프라·급여 체계 정비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신약 전쟁의 다음 승부는 누가 더 빨리 개발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넓게, 더 안전하게, 더 지속가능하게 치료를 가능하게 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