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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는 밤이었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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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던 밤은 왜 사라졌을까
[AI생성 이미지]
1980~90년대의 크리스마스 이브. [AI생성 이미지]

 

크리스마스 이브는 밤이었다.
아이들은 “오늘은 친구 ○○ 집에서 올나잇(All night)”이라는 말에 들떠 있었고, 새벽이 되면 친구들과 골목을 돌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캐럴이 흘러나오던 거리에서는 웃음과 떠드는 소리가 자연스러웠고, 빨간색·노란색 같은 원색의 옷들이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1980~90년대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렇게 거리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크리스마스는 다르다. 거리는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캐럴은 스피커 대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고, 옷의 색깔은 검정과 회색 같은 무채색이 일상복이 됐다.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크리스마스의 밤은 사라졌다.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① ‘함께 노는 밤’이 사라졌다


과거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공동체적 시간이었다.
동네 친구, 이웃, 같은 아파트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고 있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문화였다.


그러나 도시가 커지고 주거 형태가 바뀌면서 ‘모르는 사람의 문을 두드리는 행위’는 축제가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 됐다. 안전과 사생활은 강화됐지만, 그만큼 즉흥적인 교류는 줄어들었다.


② 축제의 장소가 ‘거리’에서 ‘실내’로 이동했다


80~90년대의 크리스마스는 밖에 나가야 느낄 수 있었다.
백화점과 상가, 교회와 학교, 거리마다 장식과 음악이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축제는 집 안, 식당, 예약된 공간, 혹은 온라인 콘텐츠로 이동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크리스마스는 줄어들고, 크리스마스는 계획된 소비의 일부로 남았다.


③ 색이 사라진 게 아니라, 드러내지 않게 됐다


그 시절 크리스마스에 빨간 옷이 많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크리스마스가 **‘보여주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회는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는 것을 조심한다. 튀는 색, 떠드는 행동, 밤새 노는 문화는 점점 ‘눈치 봐야 할 것’이 됐다. 무채색의 옷은 유행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조용해지길 요구받는 사회 분위기의 결과이기도 하다.


④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있지만, 의미는 달라졌다


과거의 크리스마스는 “함께 있어도 되는 날”이었다.
지금의 크리스마스는 “쉬어도 되는 날”에 가깝다.


그래서 이브의 밤은 사라지고, 크리스마스 당일은 조용해졌다. 떠들지 않아도 되고, 만나지 않아도 되는 휴일. 편해졌지만, 그만큼 기억으로 남을 장면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정말 삭막해진 걸까


어쩌면 크리스마스가 사라진 게 아니라, 방식이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거리 대신 화면에서, 캐럴 대신 알고리즘 속 플레이리스트에서, 빨간 옷 대신 작은 아이콘과 이모지로 축하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던 이브의 밤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시끄러웠고, 촌스러웠고, 색이 많았던 밤을.
크리스마스가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용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류재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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