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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 떠나는 삶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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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연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인생은 버티는 시간과 떠나는 시간이 번갈아 찾아오는 긴 여행이다. 그 두 길을 모두 걸어낸 사람만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완성할 수 있다.

“버티는 삶과 떠나는 삶”

 

문학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위로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한자리에 뿌리내린 채 묵묵히 버텨야만 하는 삶이 있고, 

익숙한 자리를 떠나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비로소 완성되는 삶이 있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문학은 오래전부터 이 두 길이 결국 하나의 인간적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해 왔다.

 

버티는 사람만이 피워내는 꽃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거대한 청새치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결국 상어 떼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지만 그는 패배자가 아니다. 

작품은 인간의 존엄은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역시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절망의 환경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는 사람은 결국 환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는 견뎌야만 지나갈 수 있는 계절이 있다. 꽃이 겨울을 건너야 봄을 맞듯, 

사람도 고난을 통과해야 더 깊어진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부모, 병마와 싸우는 환자, 

이름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평범한 직장인들. 

세상은 화려한 성공을 기억하지만 사회를 떠받치는 힘은 

대부분 이러한 ‘버티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떠나야 비로소 보이는 세상

 

반면 어떤 삶은 떠남을 통해 성장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익숙한 세계를 떠나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간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는 유명한 문장은 결국 성장에는 반드시 떠남의 용기가 필요함을 상징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도 마찬가지다. 

양치기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아 먼 길을 떠나지만, 

여행 끝에서 발견한 것은 금은보화보다 더 소중한 자기 자신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역시 여러 별을 여행하면서 사랑과 책임, 관계의 의미를 깨닫는다. 떠남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인 것이다.

 

우리 역시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때로는 여행을 떠나고, 때로는 익숙한 생각을 떠난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떠날 때 삶은 새로운 문을 연다.

 

버팀과 떠남은 서로를 완성한다

 

흥미로운 것은 위대한 문학이 버팀과 떠남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떠날 줄 아는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난다. 

그러나 버틸 줄 모르면 어떤 꿈도 끝까지 이룰 수 없다. 

반대로 버티기만 하고 떠날 줄 모르면 삶은 습관이 되고, 

익숙함은 결국 성장을 멈추게 만든다.

 

강물은 흐르기 때문에 썩지 않고, 나무는 한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숲을 이룬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강물처럼 떠나야 하고, 때로는 나무처럼 뿌리를 내려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선택

 

오늘의 우리는 빠른 변화 속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용기 있게 떠나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

 

중요한 것은 버티는 삶이든 떠나는 삶이든 결국 ‘의미’를 향해 걸어가는 일이다. 

의미 없는 버팀은 고집이 되고, 목적 없는 떠남은 방황이 된다. 

그러나 삶의 이유를 품고 견디는 사람과 희망을 품고 길을 나서는 사람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해 걷고 있다.

 

문학은 우리에게 말한다. 

인생은 버티는 시간과 떠나는 시간이 번갈아 찾아오는 긴 여행이라고. 

어느 날은 뿌리처럼 깊이 견디고, 어느 날은 바람처럼 과감히 떠나라. 

그 두 길을 모두 걸어낸 사람만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완성할 수 있다고.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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