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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 때 받은 피, 60년 넘게 갚았다”…240만 아기 지킨 ‘황금팔’ 제임스 해리슨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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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부터 81세까지 1,173차례 혈액·혈장 기증 희귀 Anti-D 항체로 Rh병 예방에 기여…2025년 2월 88세로 별세
제임스 해리슨은 60년 넘게 1,173차례 혈액과 혈장을 기증했으며, 그의 혈장에 포함된 희귀 Anti-D 항체는 약 240만 명의 아기를 보호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해리슨은 60년 넘게 1,173차례 혈액과 혈장을 기증했으며, 그의 혈장에 포함된 희귀 Anti-D 항체는 약 240만 명의 아기를 보호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열네 살 소년은 큰 흉부 수술을 받았다. 수술 과정에서 많은 양의 피가 필요했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헌혈이 그의 생명을 붙잡았다. 소년은 병원을 나선 뒤 한 가지를 마음에 남겼다. 성인이 되면 자신도 피를 나누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약속은 60년 넘게 이어졌다. 호주의 헌혈자 제임스 해리슨(James Harrison)은 18세였던 1954년부터 81세가 된 2018년까지 모두 1,173차례 혈액과 혈장을 기증했다. 그의 혈장에는 희귀한 Anti-D 항체가 풍부하게 들어 있었고, 이를 활용한 예방 치료는 약 240만 명의 아기를 보호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슨이 처음부터 자신의 혈액이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고 헌혈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1951년, 14세였던 그는 큰 수술을 받으며 수혈로 목숨을 건졌다. 주사바늘을 두려워했지만 18세가 되자 약속대로 헌혈센터를 찾았다.


몇 차례 기증이 진행된 뒤 의료진은 그의 혈액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 해리슨의 혈장에는 Rh(D) 항원에 반응하는 강한 Anti-D 항체가 들어 있었다. 이 항체는 산모와 태아의 Rh 혈액형이 맞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신생아 용혈성 질환(HDFN)을 예방하는 면역글로불린 제제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Rh 음성 산모가 Rh 양성 태아를 임신하면 산모의 면역체계가 태아의 적혈구를 공격할 수 있다. 심하면 태아에게 빈혈과 심부전이 생기거나 사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Anti-D 면역글로불린은 이런 면역반응을 예방하는 데 쓰인다.


1960년대 후반 호주에서 Rh 예방 프로그램이 본격화되면서 해리슨은 핵심 기증자 가운데 한 명이 됐다. 호주 적십자 혈액서비스인 라이프블러드에 따르면 Anti-D 항체를 기증할 수 있는 사람은 호주에서도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들의 혈장은 매년 수만 명의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는 데 사용된다.


해리슨은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헌혈센터를 찾았다. 휴가 중에도 기증 일정을 놓치지 않았고, 필요하면 다른 지역의 센터를 찾아갔다. 2011년에는 1,000번째 기증을 기록했고, 2005년에는 세계 최다 혈장 기증 기록 보유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자신의 기록에 대해 오히려 언젠가 다른 사람이 깨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기증한 혈장으로 만든 Anti-D 제제는 자신의 가족에게도 사용됐다. 딸 트레이시가 임신했을 때 치료를 받았고, 손자의 아내도 임신 과정에서 Anti-D 제제를 투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십 년 동안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산모와 아이들을 위해 내놓았던 혈장이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데도 쓰인 셈이다.


2018년, 해리슨은 81세가 되면서 호주의 헌혈 연령 제한에 따라 마지막 기증을 했다. 당시 그는 “허락만 한다면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이 1,173번째였다.

 

해리슨은 2025년 2월 17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센트럴 코스트의 한 요양원에서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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