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 — 그늘까지 사랑한다는 것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나오는 이 구절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밝고 따뜻하며 잘 웃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은 환한 얼굴보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드리워지는 그늘 속에 더 깊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살아온 세월만큼 마음에는 저마다의 그늘이 생기고 그것은 실패일 수도, 이별일 수도, 끝내 말하지 못한 후회나 오래된 상처일 수도 있으며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애써 웃음 뒤에 감춰둔 외로움일 수도 있다.
그늘은 삶이 지나간 자리다
나무에 그늘이 있다는 것은 그곳에 햇빛이 있었다는 뜻이다. 사람도 그렇다. 많이 사랑했기에 이별이 아프고, 간절히 꿈꾸었기에 실패가 오래 남으며, 누군가를 책임지며 살아왔기에 어깨에는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는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그늘은 결함이 아니라 그가 삶을 견디며 지나온 흔적이며, 때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조용한 삶의 발자취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 가운데 내 그늘을 알아보고도 곁에 머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잘될 때 박수를 보내는 사람보다 힘들 때 말없이 옆자리를 내어주는 사람, 웃음 속에 감춰둔 쓸쓸함을 알아차리고도 까닭을 캐묻지 않는 사람, “괜찮아?”라는 짧은 말 하나를 건네고 대답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어렵게 허락한 귀한 인연이다.
사랑은 그늘을 없애는 일이 아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의 그늘을 모두 걷어낼 수는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대신 아파할 수 없고, 지나간 상처를 지워줄 수도 없으며, 어떤 외로움은 끝내 그 사람 혼자 건너야 한다.
그래서 사랑은 그늘을 없애주는 일이 아니라, 그늘이 있는 그대로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더 가깝다.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우산을 함께 쓰고, 어둠을 밝힐 수 없다면 그 길의 몇 걸음이라도 나란히 걸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사랑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사람의 기준도 달라진다. 화려한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좋고, 많은 말을 하는 사람보다 내 침묵의 이유를 헤아려주는 사람이 고맙다. 무엇보다 자신의 상처를 겪어보았기에 타인의 아픔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자신의 그늘을 품어본 사람은 다른 이의 그늘에도 함부로 돌을 던지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그늘 아래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늘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의 그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인지 모른다. 오늘 내가 누군가의 그늘 아래 잠시 쉬어가고, 내일은 지친 누군가가 내 그늘 아래 머물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가려주며 한 생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환한 모습만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뒤에 숨겨둔 눈물과 오래된 상처, 말하지 못한 외로움과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픔까지 조용히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사람이 세상의 햇빛을 견디기 힘들어 잠시 그늘을 찾을 때, 말없이 곁에 서서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되어주었으면 한다.
결국 아름다운 인연이란 서로에게 햇빛만 되어주는 관계가 아니라, 때로는 서로의 그늘까지 품어주며 함께 걸어가는 관계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다면 우리의 삶은 이미 충분히 따뜻하며,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잘 살아온 인생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