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 샌퍼드 별세…'빈손으로 죽고 싶다'던 약속, 5조 원 넘는 나눔으로 남았다
"빈손으로 죽고 싶다."
한 문장이 한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 금융인 출신 자선가 데니 샌퍼드가 생전에 남긴 이 말은 결국 그의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의료와 교육, 과학 발전을 위해 40억 달러(약 5조8000억 원) 이상을 기부한 그는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경제매체 포춘 등에 따르면 샌퍼드는 생애 대부분을 사회 환원에 쏟았다.
올해 3월 기준 약 24억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재산을 후대에 남기기보다 살아 있는 동안 지역사회에 돌려주는 일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아왔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병원과 대학, 연구시설 곳곳에 남아 있다.
샌퍼드는 금융업으로 부를 일군 뒤 의료 분야를 가장 중요한 기부 대상으로 선택했다.
2007년 당시 지역 의료기관에 4억 달러를 기부했고, 이는 당시 미국 의료기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개인 기부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이 기부를 계기로 의료기관은 '샌퍼드 헬스(Sanford Health)'로 이름을 바꿨다.
현재 샌퍼드 헬스는 미국 최대 규모의 농촌 의료 네트워크 가운데 하나로 성장해 여러 주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료 지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후에도 샌퍼드 헬스의 의료 인프라 확충과 원격진료 시스템, 의학교육, 농촌 의료 환경 개선 등을 위해 수차례 거액을 지원했다.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 주민들에게 더 나은 진료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기부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과학 분야 역시 그의 관심이 이어진 영역이었다.
사우스다코타주의 폐광을 연구시설로 탈바꿈한 샌퍼드 지하연구시설에는 대규모 연구비를 지원했다. 이곳에서는 입자물리학과 우주 연구 등 국제 공동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의 기초과학 연구 거점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교육을 향한 투자도 꾸준했다.
장학 프로그램과 대학 발전기금, 학생 지원 사업에 거액을 기부했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기 힘든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도 마련했다.
대학과 지역 교육기관은 그의 후원을 통해 교육 기회를 넓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는 대학 연구와 줄기세포 의학, 동물원 시설 개선 사업에도 기부를 이어갔다. 의료 연구와 미래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에 더 큰 가치를 돌려준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샌퍼드가 나눔에 집중하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 경험도 있었다.
그는 네 살 때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잃었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의류 가게를 도우며 성장했다. 청소년 시절에는 방황 끝에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지만, 당시 판사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한 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여러 차례 회고했다.
이후 금융업에 뛰어든 그는 1986년 사우스다코타주 수폴스에서 퍼스트 프리미어 뱅크를 설립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신용등급이 낮거나 금융 이력이 부족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신용카드 사업으로 막대한 자산을 축적했고, 이후에는 그 부를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는 데 집중했다.
2007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가난하게 죽고 싶다"며 "
무엇이 나와 공동체에 가장 큰 가치를 돌려줄 수 있는지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년에는 아동 성착취물 소지 의혹과 관련한 수사가 진행되며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2022년 사우스다코타주 법무장관은 주 관할에서 기소 가능한 범죄 혐의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이후에도 그의 자선 활동과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평가는 미국 안팎에서 계속 이어졌다.
사우스다코타 주정부는 그를 지역 역사상 가장 큰 자선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했고,
그가 지원한 병원과 연구시설, 교육기관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구, 배움의 현장을 이어가고 있다.
한 사람의 이름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 수 있다.
하지만 치료를 받은 환자와 장학금을 받은 학생,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과학자의 하루는 오래 남는다.
데니 샌퍼드가 남긴 것은 거대한 재산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