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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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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여행과 나날 공식 포스터


 

일상의 속도를 낮추는 영화

여행과 나날


 

빠르게 소비되는 이야기와 자극적인 전개에 익숙해진 관객에게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은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이 작품은 사건보다 시간의 흐름을, 갈등보다 ‘마음의 결’을 따라간다. 제목 그대로 여행과 나날, 즉 이동과 반복되는 일상의 사이에서 인간이 어떻게 조금씩 변해 가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영화는 주인공이 낯선 지역을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 스쳐 가는 풍경, 혼자 보내는 침묵의 시간을 차분히 쌓아 올린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작은 역, 오래된 숙소, 조용한 골목이 주 무대다. 

카메라는 서두르지 않는다. 관객에게도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건네듯, 장면과 장면 사이에 여백을 남긴다. 이 여백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투영하게 된다.


 

여행과 나날이 주는 감동은 큰 사건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들, 예컨대 혼자 먹는 저녁 식사,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낯선 이와 나누는 짧은 인사에서 잔잔한 울림이 생긴다. 이는 일본 영화 특유의 미니멀리즘과 일상 미학이 잘 살아 있는 지점이다. 삶이란 결국 거창한 목표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영화는 조용히 설득한다.


 

이 작품에서 특히 주목할 인물은 배우 심은경이다. 심은경은 영화 속에서 이방인이자 관찰자의 위치에 선 인물을 연기한다. 언어와 문화의 경계에 서 있는 그의 캐릭터는 말보다 표정과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과장되지 않은 연기, 숨을 고르듯 이어지는 대사는 영화의 호흡과 정확히 맞물린다. 타인의 삶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관객에게도 같은 시선을 요구한다.


 

심은경의 연기는 이 영화가 국경을 넘어 공감받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외국인 캐릭터를 특별하게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낯섦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주며, 여행이란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임을 드러낸다. 그의 존재는 영화 전체에 잔잔한 긴장과 동시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여행과 나날은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둘러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하루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이 영화는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서, 삶의 속도를 잠시 낮춰 보라고 권한다. 그 권유가 끝난 뒤, 관객의 마음에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잔향이 남는다. 바로 그 잔향이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감동이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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