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홀리데이 블루스
연말연시 홀리데이 블루스
축제의 그림자에 스며든 우울과 고독
연말연시는 흔히 기쁨과 화해의 시간으로 묘사된다. 거리에는 불빛이 켜지고, 광고와 미디어는 웃음과 선물, 가족의 온기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 시기가 모두에게 따뜻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년 12월 말부터 새해 초까지, 이유 없는 우울감과 공허함, 설명하기 힘든 고독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를 ‘홀리데이 블루스(Holiday Blues)’라 부른다.
홀리데이 블루스의 첫 번째 원인은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다.
연말은 행복해야 하는 시기라는 사회적 압박이 강하다.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거나, 경제적 여유가 없거나, 관계가 단절된 사람일수록 타인의 행복한 모습은 비교의 잣대가 되어 상실감을 키운다. SNS에 넘쳐나는 여행 사진과 단란한 식탁 풍경은 자신이 뒤처졌다는 감각을 강화한다.
두 번째 이유는 관계의 재정렬이다.
연말은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멀어진 가족, 끝난 연인,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 떠오르며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감정이 표면으로 올라온다. 특히 1인 가구와 독거 노인,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 직장인들에게 이 시기는 조용한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계절이다.
세 번째는 계절적·신체적 요인이다.
일조량이 줄어드는 겨울은 생체리듬을 흔들고, 활동량 감소는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피로감, 새해에 대한 불안이 겹치면 마음은 쉽게 가라앉는다.
그렇다면 홀리데이 블루스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다. 연말에 우울하면 안 된다는 생각 자체가 또 다른 압박이 된다. 우울함과 고독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적·계절적 환경이 만든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의식적인 리듬 만들기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어도 좋다.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하고, 따뜻한 식사를 챙기며, 하루에 한 번은 누군가와 짧은 안부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고립감은 완화된다. 혼자만의 연말을 결핍이 아닌 ‘쉼의 시간’으로 재정의하는 시도도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연결의 방식 바꾸기가 필요하다. 가족 모임이 부담스럽다면 작은 봉사활동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참여, 취미 모임을 통해 느슨한 연대를 경험해볼 수 있다. 완벽한 관계가 아니라, 잠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접점이면 충분하다.
연말연시는 모두에게 같은 얼굴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축제이고, 누군가에겐 버거운 계절이다. 홀리데이 블루스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을 때, 이 시기는 비로소 견뎌야 할 시간이 아닌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으로 바뀔 수 있다. 그 작은 전환이, 새해를 맞이하는 가장 현실적인 준비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