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유족, 육필 원고 등 280여 점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

근대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염상섭(1897~1963)의 귀중한 문학 자료 280여 점이 국립한국문학관에 전달됐다. 이번 기증은 한국 근대문학사의 중요한 원천 자료를 한데 모아 보존하게 된 사례로 평가받는다.
유족이 보관해온 원고·계약서·서신 공개
국립한국문학관은 2일 “지난 3월 유족으로부터 염상섭 관련 자료를 위탁받아 정리와 수증 심의 과정을 거쳤고, 지난달 14일 정식으로 기증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기증품에는 작가가 직접 쓴 육필 원고와 구상 메모 25점, 작품 발표 지면을 모아둔 신문 스크랩 223점, 출판 계약서·이력서 등 활동 기록물 30여 점이 포함돼 있다.
특히 시인 김억과 동화작가 마해송이 보낸 편지, 언론인 유광열이 작성한 조서, 서예가 배길기가 집필한 묘비명 원고 등은 당시 문단과 사회의 인적 교류를 보여주는 귀한 사료다.
꼼꼼하고 집요했던 문학적 태도 엿보여
문학관 측은 “이번 기증 자료는 염상섭이 한국 사실주의 문학을 완성해 가던 현장을 직접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라며 “작가가 종잇조각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남겼던 기록 습관, 해방 이후 직업을 옮겨 다니면서도 끝까지 소설을 붙잡았던 집요한 정신이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또한 문학관은 이번 자료를 통해 염상섭의 문학적 행보뿐 아니라,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출판 환경과 지식인 사회의 흐름까지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대를 꿰뚫은 사실주의 문학
염상섭은 대한제국 선포 해에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을 거치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한 인물이다. 일본 유학 후 귀국해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문학 동인지 ‘폐허’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 "만세전"은 3·1운동 직후의 현실을 다루며 식민지 조선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한국 근대소설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어 「삼대」에서는 봉건적 질서와 신흥 자본가 계층이 충돌하는 식민지 사회의 복잡한 가족사를 담아내며, 일제강점기 조선의 현실을 깊이 파고들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집필된 「취우」 역시 전쟁의 참상과 인간 군상의 처절한 모습을 사실주의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학사적 가치와 향후 활용
이번 기증으로 국립한국문학관은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중요한 자산을 확보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염상섭 자료가 당시 작가들의 창작 과정과 문단 교류를 탐구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육필 원고와 메모는 문장 수정을 거듭하는 작가의 집필 습관을 보여주며, 스크랩 자료는 당시 문학이 어떻게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는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문학관은 기증품을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한편, 전시와 학술 연구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염상섭의 문학적 업적뿐 아니라,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