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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고향의 상차림, 귀국 입양인에게 건네는 명절의 손길]

산타뉴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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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도, 치즈도, 우리에겐 모두 집밥이죠”
 라타케리아 타코의 집 퇴촌점

경기 광주시의 작은 멕시코 식당, ‘라타케리아 타코의 집 퇴촌점’.


추석을 앞둔 이곳은 그 어떤 집보다도 분주했습니다. 주방에서는 고소한 전과 산적이 구워지고, 옆 테이블에는 햄과 치즈, 그리고 타코가 곁들여졌습니다. 얼핏 낯선 조합 같지만, 이 한 상은 고국으로 돌아온 입양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명절 밥상입니다.

 

“외국에서 자란 우리는 송편도, 치즈도 모두 집밥이에요.”
이야기하는 사람은 네덜란드에서 성장한 뒤 한국으로 돌아온 시모나 은미(41) 씨입니다. 세 살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입양돼 낯선 땅에서 자랐던 그는, 이제는 뿌리를 찾아 다시 한국 땅에 서 있습니다.
 

상실에서 다시 세운 삶

 

어린 시절 은미 씨는 모두가 백인인 마을에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끝없는 시선과 호기심에 노출돼야 했습니다. 한국인으로도, 네덜란드인으로도 살 수 없다는 이방감은 청소년기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결국 열아홉의 어느 날, 그는 삶을 스스로 멈추려 했습니다. 하지만 의식을 잃고 깨어난 순간, 마음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 삶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겠다.”

 

2004년, 그는 학업도 내려놓고 모은 돈을 들고 한국행을 택했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친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한국어조차 서툰 귀국 입양인의 길은 고단했습니다. 국적과 비자의 벽, 생계와 주거의 벽은 그를 끊임없이 가로막았습니다.

  

작은 행복을 짓는 집

 

좌절 속에서도 그는 다른 입양인들을 돌보는 길을 택했습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4년 전 직접 ‘작은 행복(Klein Geluk)’이라는 단체를 세웠습니다. 기부와 자신의 노동으로 마련한 수익을 모아, 귀국 입양인들에게 방 한 칸과 따뜻한 식사를 내어놓습니다. 최근에는 식당 수익의 절반을 단체 운영비로 쓰고, 입양인 직원을 직접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그저 음식을 나누는 게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나누는 거죠.”

지금은 양평의 빈 건물을 고쳐 귀국 입양인들을 위한 집을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더 많은 아이가 오가지 않길”

 

6·25 전쟁 이후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기록만 17만 명. 여전히 매년 100명 이상의 아기가 국외로 보내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정부가 ‘헤이그 국제 아동 입양 협약’에 가입하며 국제 표준을 도입했지만, 은미 씨의 마음은 복잡합니다.
“입양 절차가 단순히 ‘표준화’로만 흐른다면, 오히려 더 많은 아이가 오고 가지 않을까요. 

이미 돌아온 입양인을 위한 제도, 특히 안정적인 비자 제도가 절실해요.”

 

집밥으로 이어지는 환영의 마음

 

이번 명절에도 은미 씨의 하루는 쉴 틈이 없습니다. 양손 가득 음식을 챙겨, 왕십리 게스트하우스에서 귀국 입양인들을 맞을 준비가 한창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누구나 돌아와서 따뜻하게 맞이받을 수 있어야죠. 모든 입양인이 ‘환영받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이날 차려진 밥상에는 송편과 전, 타코와 치즈가 함께 놓였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삶의 궤적이 한 자리에 놓였지만, 그 위에는 공통된 온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집밥’이자, 그리움 끝에 찾아낸 또 다른 가족의 이름이었습니다.

 

 

성연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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