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 세계가 배우는 기술력…70년 만의 대도약

한국 의료는 한국전쟁 직후만 해도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1955년, 미국 국무부가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의료·농업·공학 분야의 인재를 무상으로 양성할 정도로 의학 기반이 취약했다.
당시 한국 의사와 연구자들은 첨단 장비는 물론 기초 의학 교육조차 해외에 의존해야 했고, 많은 의사들이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나 술기와 지식을 습득했다.
그러나 불과 7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전 세계가 배우러 오는 의료 강국으로 변모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국가적 자존심과 독립의 상징이 됐다.
과거에는 선진국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미국·유럽·호주·이스라엘 등 의료 선진국이 한국 의사들에게 배우고, 최신 수술법을 현장에서 직접 익히고 있다.
세계가 놀란 암 치료 성과
2018년 의학 학술지 ‘란셋’은 2000~2014년 세계 71개국 암 환자 3,750만 명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은 위암(68.9%), 대장암(71.8%), 직장암(71.1%)의 5년 생존율에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3대장암 5년 생존율이 70%를 넘는 국가는 한국, 이스라엘, 호주뿐이며, 미국(64.9%), 일본(67.8%), 독일(64.8%), 영국(60.0%)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직장암도 한국과 호주만이 70%를 돌파했다.
이러한 성과는 단기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1970~80년대부터 시작된 국가 차원의 암 검진 체계, 숙련된 외과 인력 양성, 그리고 빠른 신기술 도입이 맞물리며 세계 최고 수준의 치료 성적을 가능케 했다.
서울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이윤석 교수는 미국대장항문학회에 초청돼 고난도의 직장암 수술법인 ‘측방 림프샘 절제술’을 강연했다.
이는 숙련된 기술과 정밀한 해부학 지식이 필수인 수술로, 한국 의료진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이 교수는 “거의 모든 걸 해외에서 배워야 했던 전공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의 위상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그가 참여한 ‘직장암 단일공 로봇수술’ 연구는 올해 국제 학술지에서 ‘최다 인용 논문’으로 선정되며 국제적 영향력을 입증했다.
서울아산병원은 간이식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단일 기관에서 9,000례 간이식을 달성한 것은 세계 최초이자 최다 기록이다.
이 병원은 2015년부터 미국 미네소타 의대에 생체 간이식 기술을 역으로 전수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외과를 비롯한 필수의료 분야 기피 현상은 심각하다.
고난도 암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숙련 외과 의사가 줄어들면, 현재의 세계 최고 수준도 빠르게 무너질 수 있다.
이윤석 교수는 “10년 후 대장암 분야에서 고숙련 외과 의사를 4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이를 줄이기 위해선 지역 국립병원을 중추적 의료기관으로 육성하고, 필수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 진료 수가를 대폭 인상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기술력과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한국 의료가 보여준 70년의 변화는, 단순한 경제 성장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국민 건강을 국가 발전의 근간으로 삼아 꾸준히 투자하고, 의사와 연구자들이 불굴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공든 탑’이다.
과거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던 나라가, 이제는 선진국에 의술을 가르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성취를 단순한 역사로 남기지 않고, 다음 세대가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다.
한국 의료의 기술력과 자부심은 이미 세계가 인정했지만,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여전히 우리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