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에 기부…사재 5억원 내놓은 정몽준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사진제공 아산사회복지재단]](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820/1787170445938_474800667.png)
배우고 싶었지만 마음껏 배울 수 없었던 스물두 살 청년. 반세기가 훌쩍 지난 2026년, 전태일의 이름 앞에 5억원의 장학기금이 놓였다.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8월 19일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에 사재 5억원을 기부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아산재단의 설립 취지와 전태일·이소선이 남긴 사랑과 연대의 정신이 맞닿아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번 기부는 산업화의 서로 다른 기억이 ‘배움’이라는 자리에서 만났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한국 산업화를 이끈 기업가 집안이 세운 복지재단의 이사장이, 산업화 시대 열악한 노동현실을 알린 전태일의 이름을 가진 장학재단에 개인 재산을 내놓았다.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은 전태일의 친구 최종인 이사장이 2021년 사재 5억원을 출연해 설립했다. 매년 약 15명의 청년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전태일과 어머니 이소선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전태일은 가난 때문에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서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면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을 목격했고, 노동자의 권리를 알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공부했다.
하지만 법률책은 쉽지 않았다. 한자가 많아 뜻을 알기 어려웠고 주변 사람에게 물어가며 한 페이지씩 읽었다. 그에게 배움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동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길이기도 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다 22세로 숨졌다. 이후 어머니 이소선은 아들의 뜻을 이어 노동자 권익과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이번 기부의 인연은 지난 2월 아산사회복지재단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시작됐다. 전태일의 여동생인 전순옥 전 국회의원이 축사를 통해 오빠의 배움에 대한 열망과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의 활동을 소개했다.
전 전 의원 역시 독일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유학을 마친 경험이 있다. 자신이 받았던 배움의 기회가 오빠의 이름을 거쳐 다시 청년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산사회복지재단도 1977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설립한 이후 장학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지금까지 3만7000여 명에게 모두 949억원을 지원했으며, 올해 2월에도 대학원생과 대학생 498명에게 39억4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최종인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이사장은 이번 기부가 이웃을 돌아보는 청년들을 키워내는 밑거름이 되도록 힘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태일은 생전에 배움이 간절했다. 법률책 한 페이지를 이해하려 사람을 찾아가 묻던 청년이었다.
56년 뒤 그의 이름 앞에 놓인 5억원은 이제 다른 청년들의 공부를 돕는다.
전태일이 끝내 다 배우지 못한 책의 다음 페이지를, 오늘의 청년들이 넘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