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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명절, 따뜻한 한 끼를 기다리는 사람들

산타뉴스 전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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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의 풍성함 이면에서, 밥 한 끼로 이어지는 연대의 마음
[사진져공  한국경제인연합회]
[사진져공 한국경제인연합회]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골목길.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아침,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 앞에는 지팡이를 짚은 노인들이 길게 줄을 섰다. “새벽 여섯 시에 나왔어요. 오늘은 사람이 세 배는 많네요.”
연휴 전날, 무료 급식소가 문을 여는 유일한 날. 이곳의 따뜻한 밥 한 끼는 누군가에게 하루를 버틸 힘이 된다.

 

이날 준비된 식사는 한국경제인협회의 후원으로 마련된 갈비탕과 불고기, 인삼 튀김 등 500인분. 봉사자들은 “명절엔 더 많이 오실까 봐 과일과 한과까지 챙겼다”며 웃었다.
도시락 상자를 받아 든 김호문(60) 씨는 “요즘 김밥도 3천 원이 넘는데 이렇게 챙겨주는 데가 어디 있겠어요”라며 굳은 손으로 포장을 꼭 쥐었다.
 

“명절이 더 힘들어요”

 

고립된 노인들의 끼니 걱정, 10일 연휴의 그늘

‘풍성한 한가위’라는 말이 무색하게, 명절은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오히려 ‘고립의 시간’이 된다.
서울노인복지센터의 무료 급식은 평소 4,500원 식대 기준으로 운영되지만, 연휴 동안 문을 닫는다. “추석 땐 문 연 곳을 찾아다녀야 해요. 도시락도 6천 원은 하는데, 그 돈도 없어요.”라는 최종승(63) 씨의 말처럼, 끼니를 해결할 수 없는 시간은 길다.

 

라면 하나에 의지하는 이도 있다. 소귀임(81) 씨는 “박스를 주워 살아서 제대로 밥 해먹기 어렵다”며 “명절엔 그냥 집에 있어요. 나가면 돈이 들잖아요.”라고 했다.
연휴가 길수록, 식사 한 끼가 ‘사회적 고립’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청년도 밥이 부담이에요”

 

고물가 시대, 세대를 넘어선 ‘식비의 무게’

식대 부담은 이제 노년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가 인근에서도 “한 끼”는 점점 사치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청년밥상 문간’은 단돈 3천 원에 김치찌개를 내놓는 곳이다. 명절 전날, 저녁시간에는 홀로 줄을 선 청년들이 문 앞을 메웠다.


“밖에서 밥 한 끼 하면 만 원은 그냥 넘어가요.” 공연을 보러 왔다는 대학생 김모(24) 씨의 말에 다른 청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곳도 연휴엔 문을 닫는다. 기숙사 조리가 금지된 대학생 고예원(21) 씨는 “편의점 도시락으로 버텨야죠. 그마저도 부담이에요.”라며 씁쓸히 웃었다.


편의점 알바생 민성현(20) 씨는 “폐기 음식으로 식비를 줄여요. 돈을 모으려면 밥을 줄여야죠.”라며 현실을 전했다.


 

밥상에 담긴 사회의 구조

 

“지속 가능한 먹거리 지원이 필요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7.06(2020=100)으로 1년 새 2.1% 상승했다. 농축산물은 2%, 외식물가는 3.4% 치솟았다.
“명절엔 누구나 밥상 앞에서 행복하길 바라지만, 지금은 그것이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화여대 정순둘 교수는 “연휴 중 급식소를 강제로 열 수는 없지만, 고립된 이웃을 잇는 지역 협력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상효 연구위원도 “지속 가능한 식품 바우처와 지방자치단체, 민간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명절엔 도시락이나 밀키트를 사전 제공하는 등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올해 추석 연휴 동안 저소득 어르신과 결식 아동에게 도시락과 밑반찬을 배달하고, 노숙인 시설에는 매일 세 끼를 지원하는 ‘추석 종합대책’을 시행했다.
한 끼 식사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한 끼의 온기가 누군가의 하루를 바꿉니다”

 

긴 명절 동안, 누군가는 가족의 식탁을 준비하고, 또 누군가는 따뜻한 국 한 그릇을 기다린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점심 한 끼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살아갈 힘이다.
연휴가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의 하루에는 여전히 한 끼의 자리가 비어 있다.

이웃의 식탁에 온기를 더하는 일, 그것이 진짜 명절의 마음 아닐까.
 

 

 

 

전미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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