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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게·좋게·많이”… 은사의 한 문장, 100억 원 기부로 이어지다

유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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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현 한맥중공업 회장, 모교 연세대 신소재공학과에 전액 일시 기부

 

장창현 회장.[사진제공 한맥중공업 홈페이지
한맥중공업 장창현 회장.[사진제공 한맥중공업 홈페이지]

장창현 한맥중공업 회장(76)이 오는 1월 12일, 모교인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 100억 원을 일시 기부한다.
기부금은 공학관 확충과 석좌교수직 신설, 우수 학생 장학금 조성에 쓰일 예정이다.
기업 명의로 한 번에 집행되는 대규모 현금 기부는 국내 대학 사회에서도 드문 사례다.
이번 기부는 단순한 학교 후원이 아니다.
장 회장은 “50년 전 은사에게 배운 한 문장이 평생의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싸게, 좋게, 많이.’
그는 그 문장을 철강 산업 현장에서 지켜왔다고 했다.


“철강 기술자가 나라를 살린다”는 가르침


 

작년 2025년 10월 연세대에서 강연중인 한맥중공업 장창현 회장. [사진제공 연세소식]
작년 2025년 10월 연세대에서 강연중인 한맥중공업 장창현 회장. [사진제공 연세소식]

장 회장은 연세대 금속공학과 69학번이다.
대학 2학년이던 1970년, 고(故) 양훈영 교수가 학과에 부임했다.
강의 첫날, 양 교수는 칠판에 세 단어를 적었다. ‘싸게’, ‘좋게’, ‘많이’.
그는 학생들에게 “쇠는 나라의 식량”이라고 말했다.
제철소 현장에서 헬멧을 쓰는 기술자가 되어 수출로 외화를 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업 중에는 일제강점기 조선 기술자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여러 차례 말을 멈추기도 했다.


일본을 넘어서야 한다는 교육


양 교수는 일본의 금속공학 잡지를 매달 복사해 나눠줬다.
학생들은 일본어 원문을 번역하고 발표해야 했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던 일본 철강 기술을 넘어서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장 회장은 “기술로 국격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고 말했다.
졸업 후 그는 은사의 권유대로 철강 회사에 입사해 현장을 먼저 배웠다.


창업, 위기, 그리고 다시 현장으로


1978년, 장 회장은 한맥중공업의 전신인 한맥산업을 설립했다.
철강 구조물을 제작해 중동 건설 현장에 납품하며 회사를 키웠다.
하지만 1992년, 거래하던 일본 업체의 파산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그때 양 교수는 통장 여러 개를 내밀었다.
“내가 모은 전부다. 회사부터 살려라.”
장 회장은 돈을 받지 않았지만, 그 마음이 다시 버틸 힘이 됐다고 했다.


늦게 찾아온 작별


회사가 안정된 뒤 은사를 찾았을 때, 양 교수는 이미 위암 말기였다.
장 회장은 매일 새벽 노량진시장에서 전복을 사다 죽을 끓였다.
그러나 1997년 5월, 중국 출장 중이던 사이 은사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한맥중공업은 연 매출 3,500억 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2년에는 2억 달러 수출탑도 받았다.
그럼에도 장 회장은 “아직 교수님께 부끄럽지 않은 제자였는지 늘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기부의 목적은 ‘공학의 지속성’


장 회장은 이번 기부의 이유를 분명히 했다.
“능력 있는 학생들이 돈 때문에 공학을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후배들이 생활 걱정 없이 연구에 몰두하길 바란다.”
연세대는 기부금으로 공학관을 확충하고,
‘장창현-신소재공학과 기금’을 조성해 석좌교수직과 장학사업을 운영할 계획이다.
기금은 학과 교수진과 동문들의 추가 참여로 확대된다.


철강보국, 한 세대를 건너 이어지다


장 회장은 자신을 “특별한 기부자가 아닌 평범한 제자”라고 말했다.
다만 은사가 남긴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쇠를 다루는 기술은 세월과 함께 변하지만,
기술로 나라를 떠받치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한 교수의 교실에서 시작된 세 단어는
지금도 조용히 공학도의 책상 위로 이어지고 있다

유상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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