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완치보다 삶의 질 추구 — 암 치료의 목표가 달라졌다
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암 진단 이후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치료의 최우선 목표였다면, 이제 의료 현장에서는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치료 성과를 가늠하는 핵심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생존 연장을 넘어 삶의 질(Quality of Life, QOL)을 중심에 둔 암 치료가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암의 만성질환화가 있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조기 진단과 치료 성과가 개선되면서 암 생존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암 환자 5년 상대생존율은 70%를 넘어섰고, 일부 암은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장기 관리가 필요한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생존 기간이 늘어난 만큼, 치료 후유증과 삶의 불편함이 환자의 일상을 깊이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항암치료 과정에서 겪는 극심한 피로, 통증, 오심, 탈모, 인지 기능 저하 등은 환자의 사회적 활동과 인간관계, 직업 유지에 큰 제약이 된다. 특히 고령 환자나 말기 암 환자의 경우, 공격적인 치료가 생존 기간을 소폭 늘리더라도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로 인해 ‘치료를 계속하는 것이 과연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의료진과 가족 모두에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의료 현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치료 전략을 조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말기 폐암 환자에게 항암치료 대신 통증 조절과 호흡 관리에 집중하는 완화의료를 선택하거나, 고령 암 환자에게는 부작용이 적은 저강도 치료를 적용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치료의 목표를 암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스스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재설정하는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의료의 후퇴가 아니라 진일보한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종양내과 전문의들은 ‘의학적 지표상 생존 기간이 몇 달 늘어나는 것보다, 환자가 통증 없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더 큰 치료 성과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환자 본인의 가치관과 의사를 존중하는 환자 중심 치료가 암 치료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완화의료와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 변화도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치료를 포기하는 선택으로 오해받던 완화의료가 이제는 적극적인 치료의 한 형태로 재정의되고 있다. 통증과 불안을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사회적 부담을 줄이는 과정 자체가 치료라는 인식이다.
물론 삶의 질 중심 치료가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젊은 환자나 치료 반응이 좋은 경우에는 여전히 적극적 치료가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의료진의 판단이 아니라 환자의 삶의 목표와 가치가 치료 결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암 치료의 목표가 생존에서 ‘삶’으로 이동하고 있는 지금, 의료는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암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 치료의 성공을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