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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록, 그 따뜻한 마음”

산타뉴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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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째 이어지는 제주 ‘노고록 아저씨’의 추석 선행
노고록 아저씨'가 보내온 쌀 포대 [사진제공 서귀포시]
노고록 아저씨'가 보내온 쌀 포대 [사진제공 서귀포시]

제주 서귀포에는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조용히 마음을 나누는 이웃이 있습니다. 주민들은 그를 이름 대신 ‘노고록 아저씨’라 부릅니다.

 ‘노고록’은 제주 방언으로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뜻하는데, 이 말처럼 그는 1999년부터 26년 동안 설과 추석, 연말마다 변함없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을 기부해왔습니다.

올해 추석에도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9월 23일, 서귀포시 서홍동 주민센터에는 10kg짜리 쌀 100포대가 배달됐습니다. 

쌀과 함께 전해진 짧은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더워도 추석명질은 왐수다. 더워도 노고록허게 살아사허고 명질도 노고록허게 보냅서.”

 

마치 더위에 지친 이웃들에게 ‘몸은 편안히, 마음은 넉넉히 명절을 보내라’는 응원의 말처럼 들립니다.
 

이름 없는 선행, 그러나 모두가 아는 이름

 

그는 항상 익명으로 기부해 왔습니다. 하지만 쌀 자루마다 붙은 메모 속 반복되는 단어 ‘노고록’ 덕분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를 ‘노고록 아저씨’라고 불러왔습니다.

지난 설 명절에도 그는 “어르신, 명절 촐영 먹어난 생각허멍 노고록허게 명절 잘 보냅서”라는 메시지와 함께 쌀을 전했습니다. 

직접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메모 속 한 줄 한 줄에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웃으며 음식을 나누던 따뜻한 기억이 배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나눔, 퍼지는 따뜻함

 

주민센터는 매번 노고록 아저씨가 남긴 쌀을 어려운 형편에 놓인 어르신들께 전달합니다. 누군가는 그 쌀로 밥상을 차리고, 누군가는 그 정성에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이어진 선행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제주 지역에 “명절은 나눔으로 더 풍성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소리 없는 울림

 

누군가는 그를 ‘제주판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얼굴도, 이름도, 배경도 알 수 없지만, 오직 마음만으로 전해온 그의 행보는 26년 동안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매번 짧은 메모에 담긴 바람처럼, 노고록 아저씨의 마음은 이웃들의 삶을 조금 더 노고록(넉넉)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채워주고 있습니다.

 

올해 추석에도 서귀포는 그의 이름 없는 선행 덕분에 다시 한번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성연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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