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기업 사회공헌의 새로운 이정표
최근 보건복지부와 대한상공회의소, 비영리단체들이 모여 개최한 ‘2026 사회공헌 포럼’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한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민관 협력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돌봄 공백, 사회적 고립, 취약계층 지원 등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댄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번 포럼이 남긴 과제는 단순히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기부하고 협력할 것인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기업의 존재 이유와 사회적 책임의 패러다임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거대한 전환점의 입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패러다임은 명료했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 창출이었고, 그 과정에서 국가 경제가 살아나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 가정이 유지되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했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나라가 산다"는 명제는 오랫동안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해 온 불문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거대한 흐름을 통해, "사회에서 번 돈은 다시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대전환을 목격하고 있다. 기업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며, 사회라는 토양이 건강하지 않으면 기업 역시 존속할 수 없다는 자각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다.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단순히 '착한 기업'이 되는 것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초유의 격변기, 바로 'AI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이 전 산업을 지배하게 되면, 과거 자본주의가 자랑하던 '낙수효과'의 핵심 고리였던 '고용'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막대한 부와 부가가치는 기술을 독점한 극소수의 기업으로 집중되는 반면, 대다수 평범한 노동자들의 취업 문은 좁아지고 노동의 가치는 상실될 위기에 처한다.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전면화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수준을 넘어,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기본소득 배분'이라는 근본적인 체제 개혁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기업 사회공헌과 조세 정책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연구되고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첫째,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기술 기업들에 대한 세금 징수 체계의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노동력을 대체한 기술이 만들어낸 초과 이윤을 어떻게 공공의 자산으로 환원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잃은 이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세제 개혁은 더 이상 유토피아적 공상이 아닌, 체제 전복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생존 방안이 될 것이다.
둘째, 기업 사회공헌(CSR)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회공헌이 남는 재원을 쪼개어 취약계층을 '시혜적으로 돕는' 행위였다면, AI 시대의 사회공헌은 사회의 기초 체력, 즉 기초과학과 인문학 등 기초 사회 인프라에 대한 전폭적인 투자와 사회적 안전망 구축으로 진화해야 한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고통을 분담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생태계를 조성하지 않는다면, 소비력을 상실한 대중 속에서 기업 역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의 말처럼 기업의 자발성과 창의성이 사회가 필요한 현장과 연결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 역시 단순히 기업의 '선행'을 장려하고 인정해 주는 조력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정부는 다가올 AI 시대의 구조적 실업과 소득 양극화를 예측하고, 기업의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어떻게 사회적 기본권을 지키는 방어선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법적·제도적 틀을 촘촘히 짜야 한다.
"사회가 건강해야 기업도 성장한다"는 말은 이제 도덕적 당위가 아닌, 기술 빅뱅 시대를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경제학적 진리다.
2026년 지금 이 시점의 사회공헌 포럼이 던진 민관 협력의 화두가, 단순히 당장의 돌봄 공백을 메우는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다가올 미래 세대의 생존과 직결된 기본소득의 문제, 부의 재분배, 그리고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기업적 책무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가슴을 열고 진지하게 고뇌해야 할 때다.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의 풍요는 잔혹한 풍요가 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