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12대 만석꾼이 독립운동과 교육에 남긴 마지막 재산
![경주 최부자댁 [사진제공 경주시청]](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818/1786995839525_628599488.jpg)
광복절은 지났지만 광복의 의미까지 지나간 것은 아니다. 기념일이 지난 지금, 오히려 한 집안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고 싶다. 바로 경주 최부자다.
경주 최부자 가문은 12대에 걸쳐 큰 부를 이어온 만석꾼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엄청난 토지와 곡식을 소유했던 당대 최고의 부자였지만, 수백 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가 이 집안을 기억하는 이유는 재산의 규모 때문이 아니다.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벌었고, 어디에 썼으며, 마지막에는 무엇을 위해 내놓았는가. 거기에 경주 최부자의 진짜 이야기가 있다.
최부잣집에는 유명한 가훈이 전해진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에는 가난한 백성이 헐값에 내놓은 땅을 사들이지 않았고,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돌려주며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부자가 되는 방법보다 부자로서 지켜야 할 선과 책임을 먼저 가르친 집안이었다. 오늘날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를 이어 실천한 셈이다.
그 정신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지막 경주 최부자로 불리는 최준 선생은 일제강점기 자신의 재산을 독립운동에 내놓았다.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안희제 선생 등과 함께 백산무역을 통해 독립운동을 뒷받침했다. 당시 독립운동에 돈을 댄다는 것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 자신의 재산은 물론 가족의 안위까지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가슴에 남는 말이 있다.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나라가 무너지는데 땅과 재산이 무슨 소용이며, 백성이 고통받는데 곳간에 쌓인 곡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신이 누린 부 역시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나라와 사회, 이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깨달음이 담겨 있다.
경주 최부자의 재산은 그렇게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독립운동의 밑천이 되었고, 광복 후에는 교육을 위한 자산이 됐다. 최준 선생은 남은 재산을 교육사업에 내놓았다. 후손에게 거대한 재산을 그대로 물려주는 대신 다음 세대가 배우고 성장할 학교를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 한때 만석꾼으로 이름을 떨쳤던 집안의 막대한 재산은 대부분 사라졌다. 참 역설적이다. 보통 부자는 재산을 얼마나 많이 모으고 오래 지켰느냐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경주 최부자는 정반대다. 재산을 끝까지 움켜쥐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름을 남겼다. 곳간은 비었지만 명예는 남았다.
요즘 우리는 ‘금수저’, ‘몇 대째 부자’, ‘유명한 집안의 후손’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최근에는 한 배우가 자신의 집안 내력을 이야기했다가 조상의 친일 행적 논란이 불거져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이를 특정 개인을 비난하는 이야기로만 소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 묻는 질문으로 생각해볼 만하다. 후손에게 정말 자랑스러운 유산은 무엇인가.
건물과 땅, 돈은 상속할 수 있다. 그러나 존경은 상속할 수 없다.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시간이 흘러도 남는다. 재산은 사라져도 명예가 남을 수 있고, 재산은 남아도 부끄러운 역사 역시 함께 따라갈 수 있다.
더 마음 아픈 것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재산과 삶을 내놓았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 가운데 어려운 삶을 이어온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재산을 잃고 가족이 흩어졌으며, 만주와 연해주 등 타국에 정착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도 있었다.
그래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일은 단순한 선행이나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갚아야 할 감사의 빚이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그 빚을 함께 갚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가수 션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 힘을 보태는 이들이 있다. 해외에 흩어진 독립운동가 후손과 고려인들을 기억하고 돕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100여 년 전 누군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집과 땅을 내놓았고, 오늘의 누군가는 그 희생을 기억하며 후손들의 삶을 보듬는다.
경주 최부자의 이야기가 지금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상에는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이야기가 넘쳐나지만 부자가 된 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굶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이용해 재산을 늘리지 않으며, 내게 넘치는 것을 사회에 돌려주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것. 경주 최부자가 보여준 부자의 품격이었다.
광복절은 지났다. 그러나 감사에는 날짜가 따로 없다. 우리가 오늘 자유롭게 일하고 배우고 가족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자신의 청춘과 재산, 때로는 목숨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경주 최부자 가문이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수많은 땅과 곡식이 아니었다. 나라와 이웃에 대한 감사와 책임이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조상이 된다. 그때 후손들이 ‘얼마나 많은 재산을 남긴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을 좋은 곳에 쓸 줄 알았던 사람’이라고 기억해 준다면, 그것보다 값진 유산이 또 있을까.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
곳간은 비웠지만 이름은 남았다. 그것이 경주 최부자가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