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ARMY로 보는 팬덤 문화 – 제9부
산타뉴스 | 기획연재
메시지가 행동으로 바뀌는 순간

한 그루의 나무는 어느 날 갑자기 숲이 되지 않는다.
작은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지고, 누군가 물을 주고, 햇빛을 받고, 긴 시간을 견뎌야 한다.
BTS가 세상에 던진 메시지도 어쩌면 그와 같았다.
“자신을 사랑하라.”“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걸어가자.”
처음에는 한 그룹의 노래와 메시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연결은 때로 기부가 되었고, 봉사가 되었으며, 교육과 환경보호와 재난구호가 되었다.
메시지가 행동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수술을 미룬 채 BTS 공연장으로 간 팬
2026년 8월 미국 시카고.
7년 만에 BTS 완전체 공연이 열린 솔저필드에는 6만 명이 넘는 ARMY가 모였다.
그곳에서 CBS 뉴스가 만난 한 가족의 이야기는 팬덤이라는 현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만든다.
미시간에서 온 한 가족에게는 교통사고를 당해 손을 크게 다친 가족이 있었다. 최소 두 차례의 수술이 필요했지만, 그는 수술을 미루고 BTS 공연장에 왔다.
가족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웃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
이것을 단순히 ‘BTS를 너무 좋아하는 팬’의 이야기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사람에게는 때때로 고통을 견디게 하는 기다림과 희망의 대상이 필요하다. 그 가족에게 그날의 공연은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팔이 부러져도 첫 BTS 공연을 포기하지 않은 소녀 9살 반의 로지 벨라스케스도 그날 솔저필드를 찾았다. 팔에는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공연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BTS가 자신의 깁스를 보고 사인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녀에게 BTS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었다.
“일곱 명의 삼촌 같다”고 말할 만큼 친근한 존재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팬덤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 존재를 통해 힘든 시간을 견디기도 한다는 것.
독일에서는 더 깊은 이야기가 있었다. 백혈병과 싸우던 15살 소녀에게 BTS는 희망이었다.
15살 그레타 롤란드는 12살 때 급성림프모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친구를 통해 BTS를 알게 된 그레타에게 BTS의 음악과 이야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무명시절을 견디고 좌절과 불안을 이겨낸 BTS의 이야기가 자신에게도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저렇게 강한 끈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는데 나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치료 후유증으로 또 한 차례 큰 수술을 앞둔 그레타는 아버지와 10시간을 차로 달려 뮌헨 공연장을 찾았다. 그리고 BTS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한 사람의 음악이 다른 사람의 삶에서 버틸 힘이 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선한 영향력’의 첫 번째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씨앗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BTS의 메시지가 더욱 놀라운 것은 팬들의 마음속에 머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달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글로벌 팬 자원봉사 조직 One In An ARMY다.이들은 스스로를 BTS 팬들의 글로벌 모금 자원봉사단체라고 설명한다.특정 비영리단체를 조사하고, ARMY가 작은 금액을 직접 기부할 수 있도록 연결한다.중요한 것은 돈을 많이 가진 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한 사람의 작은 기부가 모이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One In An ARMY는 BTS의 LOVE MYSELF 캠페인에서 영감을 받아 2018년 시작됐다.
그리고 그 작은 씨앗은 세계 여러 곳으로 뻗어갔다.
교육, 식량, 난민, 환경, 재난구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ARMY의 이름으로 도움을 보내는 활동이 이어졌다. 2026년에도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는 서아프리카의 깨끗한 물 공급을 지원하는 #CleanWaterWithJK 캠페인도 진행되고 있다.
한 사람의 미소가 1억 원이 넘는 기부로 최근에는 더욱 직접적인 사례도 있었다.
2026년 8월 미국에서 열린 BTS 공연에서 지민은 소아암을 앓고 있는 10살 소녀 올리비아를 만났다. 지민의 포옹과 볼 키스에 소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알려진 뒤, ARMY의 마음이 움직였다. 미국 비영리단체 Heroes for Children의 ARMY 기부 페이지에는 예상 모금액 50,00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8월 31일 기준 97,232.27달러 (약 1억 3,400만 원) 원의 기부금이 모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액수 자체만이 아니다.
한 어린이의 얼굴에 피어난 작은 미소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다시 다른 아픈 어린이들을 돕는 돈이 되었다. 미소가 기부가 되고, 기부가 또 다른 미소를 만드는 것이다. 언어가 달라도, 세대가 달라도
2026년 3월에는 한국에서 아주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BTS의 컴백 공연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60대 콜롬비아 ARMY가 BTS 멤버들이 연습생 시절 자주 찾았던 유정식당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70대 식당 주인 강선자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언어를 몰랐다. 하지만 손을 잡고 포옹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어를 영어로, 영어를 스페인어로 통역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서로에게 손가락 하트를 보냈다.
동아일보는 이를 “BTS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된 한국 할머니와 콜롬비아 할머니”*라고 전했다.
여기에는 기부금도 없고 거창한 캠페인도 없다.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다시 연결되는 것.어쩌면 그것 역시 BTS가 만든 가장 중요한 열매 가운데 하나인지 모른다.
작은 기부가 세상을 움직이는 방식
ARMY의 움직임은 특정한 한 분야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육과 스포츠를 지원하는 FIFA·Global Citizen Education Fund에도 ARMY가 독립적으로 온라인 모금을 진행했다. 2026년 7월 Global Citizen은 이 기금이 총 6000만 달러 규모의 재원을 모았고, 58개 단체를 통해 전 세계 40만 명 이상의 어린이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BTS ARMY도 독립적으로 온라인 모금에 참여한 팬 커뮤니티 가운데 하나로 언급됐다.
이것은 팬덤이 단순히 공연장을 채우는 집단을 넘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시민적 공동체로도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씨앗은 누구의 것인가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이 모든 선행은 BTS가 한 것인가?ARMY가 한 것인가?
어쩌면 둘 다 맞지만, 둘 중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BTS가 씨앗을 뿌렸다.ARMY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씨앗은 팬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자라났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그 마음이 기부가 되고,봉사가 되고,교육이 되고,
환경을 생각하는 행동이 되고,재난을 당한 사람을 돕는 손길이 되었다.그리고 그 행동을 본 또 다른 사람이 다시 움직인다.씨앗 하나가 나무가 되고,나무 하나가 숲을 만든다.
이것은 팬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BTS와 ARMY를 단순히 ‘팬덤문화’라는 틀 안에서만 바라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ARMY가 선행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그리고 ARMY의 모든 행동이 언제나 선한 것도 아니다.그러나 분명히 관찰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 있다.
공통의 관심사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그 연결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중요한 사회적 가능성이다.
정치인이나 정부가 거대한 정책으로 해결하려 했던 문제 가운데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해 해결되지 못한 것도 많다.
그런데 음악 한 곡, 한 사람의 말, 한 번의 감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BTS라는 스타 자체가 아니라,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BTS가 뿌린 씨앗은 이제 세계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하지만 인류가 들어서고 있는 미래는 이전과 전혀 다르다.
인공지능은 더욱 똑똑해지고 있다.휴머노이드가 인간의 곁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람 대신 대화해주는 기계가 생기고,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 것이다.그러나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기계가 인간을 위로해주는 시대에,인간과 인간은 서로를 얼마나 위로하고 있을까?
더 똑똑한 기계를 만드는 것과 함께, 더 따뜻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
어쩌면 BTS와 ARMY가 보여준 현상은 이 질문에 대한 작은 실험인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그 연결이 사랑으로 바뀌고,사랑이 행동으로 바뀌고,행동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그 선순환이 커진다면,팬덤은 단순한 소비 공동체를 넘어 사람을 연결하는 새로운 사회적 힘이 될 수도 있다.
나무는 이제 어디까지 자랄 것인가
우리는 아직 그 답을 모른다.
BTS와 ARMY의 현상이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세계 곳곳에서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었고,누군가에게는 친구가 되었으며,누군가에게는 기부를 결심하게 한 계기가 되었고,누군가에게는 낯선 사람과 손을 잡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그리고 그 나무 아래에서 이제 새로운 사람들이 만나고 있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BTS가 얼마나 큰 스타가 되었느냐가 아닐 것이다.그들이 뿌린 메시지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떤 나무로 자라느냐일 것이다.그리고 그 나무가 언젠가 하나의 숲이 된다면,
그 숲은 BTS만의 숲도, ARMY만의 숲도 아닐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다시 믿고,사람이 사람을 다시 사랑하는 세상의 숲.
그 가능성을 우리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이야기
그러면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사람들은 왜 음악을 좋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서로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AI가 인간의 외로움까지 대신해주려는 시대에,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관계는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팬덤을 넘어 ‘인간다움’이라는 더 깊은 질문으로 들어간다.
다음 편 "엘비스와 비틀스 그리고 BTS" - 세계 대중문화가 놓은 다리와 새로운 팬덤의 탄생으로 일반적 팬덤이 팬덤 문화로 변환되는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