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3대 후회
[기획 칼럼] 인생은 아름다워라
인생의 끝자락에서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떠올리는 말이 있다.
조금 더 참을걸,
조금 더 베풀걸,
조금 더 즐길걸.
이 세 문장은 개인의 사적인 아쉬움을 넘어, 오늘의 우리 사회가 되짚어야 할 철학적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성인들의 삶 속 구체적 장면을 통해 이 3대 후회를 들여다보면, 개인의 윤리와 사회의 품격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첫째, ‘참을걸’의 후회는 절제의 미덕이 사라진 시대의 자화상이다.
직장에서의 말 한마디, 가정에서의 순간적 분노, 인간관계에서의 감정적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남긴다. 퇴직 후 고립감을 호소하는 중년 남성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때 한마디만 참았어도 관계가 이어졌을 텐데’라고 말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중용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감정이 치솟는 순간 한 박자 멈추는 실천이다. 참음은 비겁함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는 용기다.
둘째, ‘베풀걸’의 후회는 소유 중심 사회의 그늘을 드러낸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에도 나눔을 미루다, 은퇴 후 허무를 호소하는 사례는 낯설지 않다. 한 자영업자는 돈을 모으는 데만 급급했고,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조차 인색했다고 회상한다. 공자의 인(仁)은 타인을 향한 마음의 확장이다. 베풂은 손해가 아니라 신뢰의 축적이며, 사회적 자본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나눔이 사라진 사회에서 고독은 필연이 된다.
셋째, ‘즐길걸’의 후회는 성과주의가 만든 삶의 공백을 말해준다.
성실히 일해왔지만 취미도, 추억도 남지 않았다는 고백은 오늘의 성인들에게 흔하다.
가족과의 여행을 다음으로 미루고, 건강을 은퇴 후로 유예한 대가가 뒤늦게 찾아온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즐거움은 방탕이 아니라 삶의 균형이다.
즐김은 도피가 아니라 회복이며, 지속 가능한 노동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다.
이 세 가지 후회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참지 못해 관계가 깨지고, 베풀지 않아 신뢰가 줄며, 즐기지 못해 삶의 의미가 말라간다.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이는 제도와 문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속도와 경쟁을 숭배하는 사회는 참음을 조롱하고, 나눔을 비용으로 환산하며, 즐김을 사치로 낙인찍는다.
그 결과 우리는 성취는 늘렸지만 만족은 잃었다.
이제 반면교사를 현실의 지침으로 바꿀 때다. 말 한마디 앞에서 멈추는 절제, 관계를 살리는 나눔, 일상에 숨을 불어넣는 여유를 제도로, 문화로 회복해야 한다.
기업은 성과뿐 아니라 관계를 평가하고, 공동체는 봉사를 미담이 아닌 일상으로 만들며, 개인은 휴식을 죄책감 없이 선택해야 한다. 인생의 끝에서 후회를 줄이는 일은 결국 지금의 선택을 바꾸는 일이다.
조금 더 참자, 조금 더 베풀자, 조금 더 즐기자. 이 단순한 문장이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철학이 될 때, 후회는 줄고 우리의 삶은 깊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