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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박금이에서 세계의 박경리로…문학의 길 다시 잇는 우리은행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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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탄생 100주년 맞아 토지문화재단과 문화협력…1억원 기부하고 ‘토지’ 영문 번역·출판 지원 1954년 상업은행 용산지점에서 시작된 인연…우리1899 특별전으로 초기 작품과 소장품도 공개
19일 정진완 우리은행장(왼쪽)과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서울 중구 우리은행 역사관 ‘우리1899’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 우리은행]
19일 정진완 우리은행장(왼쪽)과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서울 중구 우리은행 역사관 ‘우리1899’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제공 우리은행]

한 은행의 오래된 사보에 스물여덟 살 은행원이 자신의 본명으로 작품을 남겼다. 그 이름은 ‘박금이’. 훗날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박경리다. 72년 전 은행원과 직장의 인연은 이제 한국문학을 세계 독자에게 전하는 문화 후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은행은 8월 19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역사관 ‘우리1899’에서 토지문화재단과 문화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1억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작 ‘토지’의 영문 번역과 출판을 지원하고, 한국문학의 해외 확산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이날 협약식에는 정진완 우리은행장과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참석했다. 두 사람은 박경리 작가의 모습이 담긴 전시 공간 앞에서 협약서를 들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은행과 작가의 오랜 인연을 기록해 놓은 역사관에서 새로운 문화협력의 약속이 맺어진 셈이다.


이번 후원의 출발점에는 박경리 작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은행원 시절이 있다.


박경리 작가는 등단 전인 1954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 용산지점에서 근무했다. 당시에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그는 은행 업무를 하면서도 글을 놓지 않았다.


상업은행 사보 ‘천일’에는 ‘박경리’라는 필명 대신 본명 ‘박금이’가 등장한다. 그는 이 이름으로 장편시 ‘바다와 하늘’을 발표했다. 퇴사한 뒤에도 은행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아 단편소설 ‘전생록’을 사보에 기고했다.


한국문학사의 거대한 작품 세계가 완성되기 전, 한 직장인이 일과 글쓰기를 함께했던 시간이 은행의 기록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뒤 박경리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장대한 서사로 담은 대하소설 ‘토지’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개인의 삶과 가족, 역사와 시대를 깊숙이 파고든 그의 문학은 한국문학의 중요한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은행이 이번 협력에서 특히 힘을 싣는 분야도 ‘토지’의 해외 진출이다.


은행은 ‘토지’ 영문 번역과 출판 사업을 후원해 해외 독자들이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반을 넓힐 계획이다. 한국문학을 국내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언어권 독자와 만날 수 있도록 번역과 출판 과정에 힘을 보태겠다는 취지다.

박경리(朴景利, 1926년 12월 2일 ~ 2008년 5월 5일)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박금이(朴今伊)고 본관은 밀양이다. 대하소설 《토지》가 대표작이며 이외에도 《김약국의 딸들》, 《불신시대》 등 많은 작품이 있다. [사진제공 나무위키]
박경리(朴景利, 1926년 12월 2일 ~ 2008년 5월 5일)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본명은 박금이(朴今伊)고 본관은 밀양이다. 대하소설 《토지》가 대표작이며 이외에도 《김약국의 딸들》, 《불신시대》 등 많은 작품이 있다. [사진제공 나무위키]

올해 박경리문학상에서는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상도 후원할 예정이다. 탄생 100주년을 한 작가를 기념하는 행사에 머물지 않고 문학 생태계와 해외 독자까지 지원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박경리의 작품을 책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지하에 위치한 은행 역사관 ‘우리1899’에서는 9월 18일까지 ‘박경리 특별 기획전’이 열린다. 박 작가가 상업은행에 근무하던 시절 사보에 발표한 초기 작품과 개인 소장품 등 관련 자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사보에 남은 ‘박금이’라는 이름은 이번 전시를 바라보는 중요한 지점이다.


오늘날 독자들이 기억하는 거장의 이름보다 먼저 존재했던 한 생활인의 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은행 창구에서 하루의 업무를 이어가던 사람이 퇴근 뒤 글을 쓰고, 사보에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의 문학을 만들어가던 흔적이 70여 년을 건너 다시 독자 앞에 놓인다.


기업의 문화 후원은 금액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떤 문화적 자산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음 세대와 해외 독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느냐도 중요하다.


우리은행의 이번 1억원 기부 역시 박경리 작가와 자사의 역사적 인연을 토대로 추진됐다. 토지문화재단과의 협약을 통해 번역·출판을 지원하고, 특별전과 문학상 후원으로 박경리 문학의 현재적 접점을 넓히는 것이 사업의 주요 내용이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박경리 작가의 문학적 유산이 세계로 뻗어나가 우리 사회에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경리 탄생 100주년은 이미 완성된 거장을 기념하는 시간인 동시에 그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다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1954년 상업은행 용산지점에서 근무했던 박경리는 은행 사보에 ‘박금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남겼다. 70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은행은 그의 대표작 ‘토지’가 해외 독자들과 만날 수 있도록 영문 번역과 출판을 지원한다.


은행원 시절 맺은 인연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문학 후원으로 다시 이어졌다. 오래된 사보에 남아 있던 ‘박금이’의 글과 세계문학을 향해 가는 ‘박경리’의 작품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이유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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