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성(泗沘城)―부여의 옛이름
부여(夫餘)는 지금도 백마강, 고란사 및 낙화암과 더불어 사비성을 그리워하며 금강 끝자락에 고즈넉하게 도사려 있습니다.
아직도 철길은 없고 버스나 자동차로 가고 올 수가 있습니다. 부여는 논산 평야를 앞에 두고 그 뒷산 너머로 숨어 있습니다.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부소산성이 있고, 그 앞이 바로 사비성 입니다. 백마강은 사비성을 끼고 굽게 흐르는 금강 줄기의 마지막 악장 입니다. 그 악장은 아직도 서글픈 사비 백제의 한숨 입니다.
삼국시대 제일 먼저 사라진 사비 백제의 마지막 숨결이 백마강에 잠겨 있는 듯 합니다. 백마강 강바닥이 높아져서 낙화암에서 내려다 보는 절벽은 아주 가까워 보입니다. 그 옛날 높은 낙화암 절벽 아래 백마강으로 몸을 던진 궁녀들의 자태는 전설 속에 살아 있고, 무심한 물길만이 내려다보는 눈길로 마주쳐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 백마강 낙화암!

백제의 역사를 살펴봅니다.
한강변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온조왕의 한성 백제는 삼국 중 제일 먼저 국력을 떨쳐냈습니다. 4세기 초의 삼국 정세는 백제 우위였습니다. 근초고왕은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 북으로 고구려를 공략하고 남으로 마한을 통합 하였습니다. 371년 백제군은 평양성 부근까지 고구려를 공략하여 고국원왕을 전사 시켰습니다. 신라는 아직 서라벌 족장 중심의 작은 국가로서 국력이 미미하였습니다.
이 무렵 중국은 오호십육국 시대로 분열되어 있었기에 백제가 중국을 공략하기 좋았습니다. 백제는 황해 건너 산동반도와 요서 지역 해변을 장악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백제 근초고왕 전성기 이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남진 정벌로 개로왕이 전사하고 위례성이 함락되면서, 문주왕이 웅진(공주)으로 천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후일 성왕이 사비로 재차 천도를 하였습니다.
개로왕이 전사한 475년의 정세는 고구려의 장수왕 남진 정책이 한반도를 흔들었습니다. 한성 백제의 수도 위례성 주변은 넓은 벌판이 있고 한강의 수로를 통한 교통이 편리한 지역이었습니다. 고구려는 한강변 한성 백제를 탐 내었습니다.
장수왕이 3만 군사로 백제를 공격하자, 저항하던 백제는 무너지고 개로왕 마저 전사한 것입니다.
이시대 신라는 아직 국력이 미미한 서라벌 중심 국가였습니다. 이후 강성해진 신라와 백제는 나제동맹(羅濟同盟)으로 고구려와 대적하였습니다.
성왕은 백제의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하여 웅진을 떠나 사비 천도를 단행 하였습니다. 무왕은 마동(마를 캐는 어린이)이라는 전설 속의 젊은이로서, 신라 수도 서라벌에서 마를 캐며 동요를 퍼뜨려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얻어서 백제로 왔다고 합니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마동 설화는 부여 궁남지에 재현되어 있습니다.
궁남지는 백제 수도 사비성에 인공으로 조성된 호수 입니다. 요즘은 연꽃의 요람지 입니다. 각양각색의 연꽃들이 그 자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궁남지 한 켠에 계백장군 오천 결사대의 웅혼한 탑이 서있어, 보는 이들의 감회를 흔들어 놓습니다.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던 백마강과 황산벌!
황산성 아래 황산벌에는 계백장군 5천 결사대의 기백이 서려 있습니다. 놀뫼(黃山)라는 옛이름 속에 황산벌이 있습니다. 요즘 논산 입니다. 그 논산의 서쪽 끝 무렵이 강경으로서 바로 백마강 하류입니다.
놀뫼 땅 강경 황해 교역로 백마강 입구로부터 당나라 소정방 군대가 물길을 거슬러 사비성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660년 백제의 최후는 중과부적 항복 이었습니다.
마지막 임금 의자왕과 백제 백성 수만 여명이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사비 백제의 사연을 품은 부여의 유적을 살펴 봅니다.
부소산성은 사비 왕궁의 뒷 요새였습니다. 뒤로 백마강을 방패로 하면서 사비를 호령하고 있습니다. 백제 사비 왕성은 사라지고 없지만 복원된 부소산성이 그 희미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부소 산성 뒤 백마강 변에 낙화암과 고란사가 있습니다. 고란사 약수는 불로장생 한다는 전설을 품고 오늘도 솟아납니다.
사자루는 부소산성 정상에 있는 누각입니다. 그곳에서 부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반월루는 부소산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누각 입니다.
고구려, 신라와 백제 삼국시대 역사는 세월 속에 스며들었지만, 한반
도 북쪽 부여로부터 흘러 내려온 고구려의 소서노와 온조 및 비류(인
천 지경에 도읍을 정했지만 망했음)의 역사가 아직도 우리들의 마음
을 흔들고 있습니다. 백제 왕들은 부여를 그들의 성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 부여의 애잔한 흔적을 살펴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