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노인, 당뇨 위험 34% 더 높다

노년기 외로움이 단순한 정서적 고통을 넘어, 실제로 생명을 위협하는 건강 문제로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의 경우,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현저히 높고 혈당 조절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회적 연대와 돌봄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켁 의과대학의 사미야 칸 박사 연구팀은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내분비학회(ENDO 2025) 연례회의에서 고립된 노인과 당뇨병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입증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의 2003~2008년 데이터를 바탕으로 60세 이상 성인 3833명을 표본으로 삼아, 사회적 고립과 당뇨병 발병률, 혈당 조절 능력 사이의 연관성을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약 34% 더 높았으며, 혈당 조절에 실패할 가능성은 무려 7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외로움은 단지 정신적인 우울감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신체 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만성질환을 악화시키는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와도 일치한다. WHO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전 지구적 건강 위협’으로 규정하며,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매시간 약 100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연간 87만 명 이상의 인명 피해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6분의 1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노년층에서는 약 3명 중 1명, 청소년층에서는 4명 중 1명이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WHO는 외로움이 심장질환, 뇌졸중, 당뇨병, 우울증, 불안장애, 자살 등의 위험을 증가시키며, 삶의 질과 기대수명을 동시에 낮추는 요인임을 지적했다.
사회적 고립을 유발하는 요인으로는 질병, 경제적 취약성, 교육 수준, 가족 해체, 1인 가구 증가, 지역사회의 공동체 기능 약화, 디지털 기술의 과도한 의존 등이 꼽힌다. 특히 스마트폰, SNS 등 디지털 소통 방식에만 의존할 경우 인간 고유의 비언어적 소통 능력(표정, 눈빛, 몸짓, 침묵 등)이 약화되어 고립감이 심화될 수 있다고 WHO는 경고했다.
머시(Murthy) 공동 위원장은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며 감정을 주고받아왔다. 그러나 디지털 중심의 사회는 이러한 연결을 단절시키고 있다”며 “기술이 인간관계를 대체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WHO는 2023년 ‘사회적 연결 회의체(Global Commission on Social Connection)’를 출범시키고, 외로움 문제를 팬데믹 이후 보건 분야의 핵심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 회의체는 정부, 지역사회, 보건의료계, 교육계 등 다방면의 협력을 통해 외로움에 대응하는 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노인의 경우, 당뇨뿐 아니라 인지 기능 저하, 낙상 사고, 약물 순응도 저하 등도 사회적 고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고립된 노인이 병을 제때 인식하거나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의료 접근성 개선과 동시에 정서적 교류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1인 가구 증가, 지역 간 돌봄 격차, 디지털 소외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맞물려 외로움은 점점 더 고립된 이들의 생존 문제로 번지고 있다. 관계 전문가들은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나서야 할 공공보건 문제”라며 종합적인 대응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