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구한 평범한 시민의 메달”…120년 이어진 ‘카네기 메달’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년 11월 25일 ~ 1919년 8월 11일)는 미국의 철강 재벌이다. [사진제공 위키백과]](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1007/1791381630498_241386395.jpg)
120여 년 전 탄광 사고 현장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평범한 시민들의 희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카네기 메달’의 시작이 됐다. 미국의 철강사업가 앤드루 카네기는 1904년 펜실베이니아주 하윅 탄광 참사를 계기로 500만 달러를 출연해 카네기 영웅기금위원회를 설립했다.
1904년 1월 25일 오전, 피츠버그 인근 하윅 탄광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카네기 영웅기금위원회 기록에 따르면 광부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폭발 소식을 듣고 광산 기술자 셀윈 테일러와 광부 대니얼 라이일 등이 구조에 나섰다. 사고 당시 광산 안에 있지 않았던 이들은 생존자를 찾기 위해 갱도로 들어갔다.
테일러는 광산 안에서 살아 있던 10대 소년 아돌프 구니아를 발견한 뒤 다른 생존자를 찾기 위해 다시 안으로 향했다. 라이일 역시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 두 사람은 결국 유독가스에 희생됐다.
광산에서 일하던 사람과 구조에 나섰던 이들을 포함해 모두 181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사 소식을 접한 카네기의 시선은 광산 밖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향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광산의 과부들과 아이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뜻을 전했고, 유가족 구호를 위해 4만 달러를 내놓았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네기는 같은 해 500만 달러 상당을 출연해 카네기 영웅기금위원회(Carnegie Hero Fund Commission)를 설립했다. 직업적 의무가 없음에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 시민을 찾아 기리고, 필요할 경우 당사자와 유가족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카네기 메달’이다.
위원회는 실제 구조 과정과 위험 정도 등을 조사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구조 과정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경우에는 본인과 가족을 위한 지원도 제공해 왔다.
카네기가 만든 제도는 120년이 넘은 지금도 미국과 캐나다에서 운영되고 있다. 2018년에는 1만 번째 카네기 메달 수상자가 나왔다.
1904년 하윅 탄광으로 들어갔던 테일러와 라이일은 돌아오지 못했다.
카네기는 두 사람의 이름을 메달에 새기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에 같은 선택을 하는 평범한 시민과 그 가족까지 기억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1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카네기 메달이 수여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