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확대
한국은 지금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정부는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150GW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는 전력 믹스의 역사적 변화를 의미하며,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필수 과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성장의 주체가 국내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태양광은 값싸고 품질 좋은 중국산에, 풍력은 유럽산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되면서 한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설치 중심·수입 중심’으로 굳어지고 있다.
태양광 셀과 풍력 터빈 같은 핵심 기자재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다.
국가 전력 시스템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 핵심 인프라가 해외 공급망에 종속되면, 가격·유지보수·부품 수급·기술 업데이트 모든 요소가 외부 리스크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재생에너지 확대가 곧 ‘에너지 안보 취약성 확대’로 이어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시장 점유율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전력 시스템이 외국 기업의 기술과 가격 정책에 좌우되는 구조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런 위험을 이미 인식하고 자국 산업 보호와 육성에 나섰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태양광·풍력·배터리 등 청정에너지 산업에 대규모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지급한다. 핵심은 ‘Made in USA’ 제품을 우대하는 구조다.
유럽연합은 ‘넷제로 산업법(Net-Zero Industry Act)’을 통해 2030년까지 EU 내 청정에너지 핵심 기술 생산 비중을 4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공공조달에서 유럽산 제품을 우선 고려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
일본은 해상풍력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정부가 직접 실증시험장을 운영하며 자국 기업의 기술 축적을 지원한다.
이들 국가는 단순히 설치량 확대에 그치지 않고, 자국 제조업 기반을 강화해 수출 경쟁력까지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국내 제조업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과 품질 향상으로 국내 제조업 기반이 급속히 약화.
- 풍력 터빈 국산 점유율은 2019년 53%에서 최근 13%대로 급락.
- 정부의 실증 인프라 부족, 공기업의 국산 장비 사용 미흡, WTO 규범 우려로 인한 우대 정책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
태양광 셀 국산 점유율은 급락했고, 풍력 터빈은 2019년 53%에서 최근 13%로 떨어졌다.
해상풍력 확대 정책이 발표되었지만, 국내 기업은 대형 프로젝트에서 배제되고 있다.
지멘스가메사, 베스타스 등 유럽 기업이 초기 프로젝트를 대부분 차지하면서
국내 기업은 입찰조차 어렵거나 의미 있는 실적을 쌓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국산 없는 성장’이라는 역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설치 목표가 아니라,
국내 제조업을 살리고 해외로 수출하는 구조를 만드는 치밀한 전략이다.
첫째, WTO 규범을 피하면서도 국산 제품에 가점을 줄 수 있는 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 유지보수·부품 수급 안정성을 입찰 조건에 포함하면 국산 장비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둘째, 태양광·풍력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R&D와 실증 인프라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대형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국내 기업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셋째, 한전과 발전 공기업이 국산 장비 사용을 의무화하고 초기 시장을 견인해야 한다.
재생에너지공기업 신설을 통해 국산 장비 실증·보급을 선도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국내 기업이 기술과 생산 기반을 확보해 해외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태양광·풍력 수요가 급증하는 지역을 타깃으로 국산 기자재를 공급하고, 미국·유럽 시장에는 현지 합작·공장 설립을 통해 진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개발도상국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국산 장비 패키지를 수출하는 ODA 연계 모델도 효과적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필수 과제다.
그러나 제조 기반 없는 확대는 결국 중국과 유럽의 산업을 키우는 ‘좋은 일’만 하고,
한국의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길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산화 기반의 재생에너지 성장이다.
미국 IRA, EU 넷제로 산업법, 일본 해상풍력 전략처럼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과감히 도입해야만, 한국의 재생에너지 전환은 진정한 지속성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국내 태양광과 풍력 산업의 부침 역사
1. 국내 태양광 산업의 성장과 쇠퇴 사례 분석
짧은 전성기와 긴 조정기를 거친 한국 태양광 산업은, 정책·공급망·기술경쟁력의 교차점에서 성장을 이뤘다가 급격한 쇠퇴를 경험했다. 지금은 다시 재진입을 모색하는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
성장기 : 정책 드라이브와 대기업 참여
- 정책 확대와 보급 목표 상향 : 재생에너지 확대와 RE100 기조 속에서 정부 보급 목표가 상향되며 설치량이 빠르게 증가했다. 다만 2020년 이후 신규 설치는 4GW 정점을 찍은 뒤 하향세에 접어들며 성장의 모멘텀이 약화되었다.
- 대기업의 밸류체인 확장 : 국내 최대 태양광 기업을 중심으로 셀·모듈에서 발전·운영까지 밸류체인을 넓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입지를 강화했다. 대기업의 ESS(에너지저장장치) 기술력은 전력 안정화 솔루션과 결합해 산업의 신뢰도를 높였다.
- 산업 생태계의 다변화 : 모듈, 인버터, 설치·시공, 자재·부품 등 다양한 업종이 성장하며 생태계가 형성됐고, 재생에너지 확대의 핵심 역할로서 산업적 존재감을 키웠다.
쇠퇴기 : 가격경쟁과 제도 불확실성
- 중국발 가격 공세 : 글로벌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으로 국내 기업의 수익성이 급감했고, RPS(신재생의무공급) 입찰에서 국내 모듈의 참여·낙찰 비중이 크게 낮아지는 등 경쟁력이 흔들렸다.
- 내수 둔화와 정책 신뢰 약화 : 국내 시장은 2024년에 전년 대비 약 15% 설치량 감소가 전망될 정도로 위축됐고, 업계의 95%가 “전년보다 시장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목표치 대비 보급량도 3GW 미만으로 예측돼 성장률 둔화가 구조화되고 있다.
- 허가·계통 제약과 보조금 의존 : 허가·계통의 병목과 제도적 한계가 누적되며 보조금 의존형 성장이 한계에 직면했고, 발전단가 하락 속에서 프로젝트 수익성이 저하되었다.
주요 사례 요약
- 대기업 중심 지속 가능성 : 국내 대표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모듈·발전 사업을 병행하며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ESS와 결합한 프로젝트 역량은 여전히 산업의 강점이다.
- 중견·중소기업의 변곡점 : 가격 경쟁 심화와 낙찰률 하락, 내수 둔화로 실적 공백이 커졌으며, 일부 기업은 설치·시공 중심에서 O&M, 리파워링, ESS 결합형 사업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 폴리실리콘·소재 부문 : 글로벌 사이클 변동으로 투자가 위축되었지만, 고순도 소재와 리사이클링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며 기술형 기업의 재도약 여지가 생겼다.
재진입 가능성과 기술적 강점
지금 가능한 재진입 포인트
- ESS 결합형 사업 : 전력망 안정화 수요 증가로 ESS와 태양광의 패키지화가 현실적인 해법이며, 국내는 세계 최고 수준 배터리 기술력을 보유해 차별화가 가능하다.
- 공공·조달 시장 : 공기업·공공조달에서 국산 제품 우대가 제도적으로 설계된다면, WTO를 고려한 “유지보수·부품 안정성” 가점 방식으로 국산 밸류체인 복원이 가능하다.
- 리파워링·O&M : 노후 설비의 성능 개선과 운영 최적화 시장이 커지면서 모듈 교체, 인버터 업그레이드, 모니터링·예측 유지보수 등 서비스형 수익 모델이 확대된다.
- 해외 신흥시장 진출: 국내 조달 둔화를 보완하기 위해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등 성장형 시장으로 EPC·모듈·ESS 패키지 수출 또는 합작 형태로 재진입할 수 있다.
국내 기술적 강점
- 배터리·ESS 기술 : 계통 안정화와 간헐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ESS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기술은 프로젝트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자산이다.
- 프로젝트 통합 역량 : 설계·조달·시공(EPC)과 운영·정비(O&M)를 아우르는 통합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많아, 턴키 패키지로 해외 사업에서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다.
- 품질·신뢰 표준: 국제 인증·표준 준수 경험이 풍부해 공공조달·금융조달에서 리스크를 낮추는 강점이 있다.
정책·산업 측면의 필수 조건
- 정교한 인센티브 : 국산 기자재 사용 시 유지보수·부품 안정성, 라이프사이클 비용을 평가 반영해 실질 가점을 부여해야 한다.
- 허가·계통 병목 해소 : 인허가 간소화, 계통 보강 투자, 예측가능한 제도 운영으로 프로젝트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
- R&D·실증 플랫폼 : 재활용·저감공정, 고효율 셀, 인버터·EMS 고도화 등 핵심 기술에 국가-기업 공동투자를 확대하고, 실증을 통해 레퍼런스를 확보해야 한다.
결론
국내 태양광 산업은 가격경쟁 심화와 제도 불확실성으로 쇠퇴했지만, ESS 결합형 솔루션, EPC·O&M 통합 역량, 국제 인증 기반의 신뢰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재진입 가능성이 충분하다.
관건은 국산 밸류체인을 회복하는 정교한 인센티브와 병목 해소, 실증 기반 확충이다.
설치 중심의 수입 의존을 벗어나 “국산화-실증-수출”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다음 사이클에서 확실한 반등이 가능하다
2. 국내 풍력 산업의 성장과 쇠퇴 사례 분석
태양광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풍력 산업도 성장과 쇠퇴의 사이클을 겪어왔다. 특히 해상풍력은 세계적으로 급성장하는 분야인데, 한국은 전략산업으로 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조업 기반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다.
국내 풍력 산업 성장기
- 2000~2010년대 초반 :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정책과 함께 국내 기업들이 풍력 터빈을 자체 개발.
- 국산 점유율 상승 : 2019년 기준 국내 풍력 터빈 점유율은 53%까지 올라가며 의미 있는 성과를 냄.
- 초기 해상풍력 프로젝트 참여 : 탐라해상풍력(제주) 등에서 국산 장비가 일부 사용되며 기술 축적을 시도.
쇠퇴기
- 국산 점유율 급락 : 최근 국산 풍력 터빈 점유율은 13%대로 추락.
- 대형 프로젝트 배제 : 지멘스가메사, 베스타스 등 유럽 기업이 국내 해상풍력 초기 프로젝트를 대부분 차지.
- 규모의 경제 부족 : 국내 기업은 대형 프로젝트 경험과 실적이 부족해 입찰 경쟁에서 밀림.
- 실증 인프라 부족 : 해상풍력 실증시험장이 부족해 기술 검증과 고도화가 어려움.
재진입 가능성과 기술적 강점
- 중소형 풍력 기술력 : 국내 기업들은 중소형 풍력, 육상풍력 분야에서 여전히 기술력을 보유.
- 해상풍력 부품·O&M 역량 : 터빈 전체 경쟁력은 약하지만, 부품·유지보수·설치 기술은 강점이 있음.
- 공기업 주도 가능성 : 한전·발전 공기업이 국산 장비 사용을 의무화하면 초기 시장을 견인할 수 있음.
- 수출 기회 : 동남아·중동 등 신흥시장에서 중소형 풍력·하이브리드(태양광+풍력+ESS) 솔루션으로 진출 가능.
정책적 조건
- 전략 제조업 지정 : 해상풍력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R&D·실증 인프라 확대.
- 국산 장비 가점 제도화 : WTO 규범을 피하면서도 유지보수·부품 안정성 평가 항목을 강화.
- 공기업 중심 실증 : 공기업이 국산 장비를 사용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주도해 레퍼런스 확보.
정리하면, 한국 풍력 산업은 한때 국산 점유율이 절반을 넘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해외 기업 의존도가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부품·O&M 기술력, 공기업 주도 실증, 신흥시장 진출을 발판으로 다시 재진입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