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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해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무너진 신뢰, 지켜야 할 사명감

산타뉴스 김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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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공무원의 ‘진짜 희생’을 국가가 책임지는 날을 기다리며
이창석 공노총 소방노조 위원장 [사진제공 참여와혁신]
이창석 공노총 소방노조 위원장 [사진제공 참여와혁신]

“내가 다치면 우리 가족이 고생하고, 우리 아이가 고생하겠구나.”

이 말은 한 소방관이 기자에게 조심스레 건넨 고백이다.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에게조차 이제는 ‘신뢰’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과거엔 비옷 하나 걸치고도 현장으로 달려갔던 선배들이 있었다.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믿음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남은 300만 원은 누가 책임지나”

 

한 소방공무원은 공상(公傷) 판정을 받지 못해 치료비 일부를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 

인사처와 협의 끝에 뒤늦게 현실화가 이루어졌지만, 이런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부조리를 이제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노조 내부망에는 각종 사례가 공유되고, 조합원들은 서로의 상처를 목격한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해봤자 나라가 우리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냉소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


 “트라우마는 완치되지 않는다”… 끝까지 책임지는 제도가 필요하다

 

소방공무원노조는 지난 8월, 퇴직자까지 아우르는 정신건강 보호체계를 정부에 요구했다.
“트라우마는 단기치료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저 역시 상담을 받아도 죄책감이 남아요.”


그의 말처럼, 재난 현장은 퇴직 한 달 전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9·11 테러 당시 투입된 소방관과 경찰의 정신건강을 2090년까지 관리한다. “종신 관리”에 가깝다. 

반면 한국은 퇴직과 동시에 “공무원 신분이 아니니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소방은 재난안전의 중심인데… 처우 개선 논의에서는 빠져”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재난안전 분야 공무원 처우 개선을 지시했다. 

그러나 정작 재난 현장의 최전선에 있는 소방과 경찰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인원이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부조직법에는 ‘재난안전관리를 총괄하는 기능은 소방에 둔다’고 명시돼 있지만, 수당이나 복지, 안전보호 논의에서는 늘 빠진다. 

심의위원회 구성도 일반직 중심이라, 노조는 “소방·경찰·교정직의 참여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행정안전부와의 협의가 이어지고 있고, 대통령실에도 의견서를 전달 중이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씁쓸한 자조의 유행

 

한때는 ‘국민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 하나로 불길에 뛰어들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회식 자리에서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책임 회피와 부처 간 떠넘기기가 현장의 사기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나를 믿어주길 바라듯, 우리도 국가를 믿고 싶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사명감은 국가가 키워야 한다

 

소방공무원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라는 말이 아니라 ‘신뢰’다.
국민의 안전은 결국, 그 안전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정부가 우리를 믿어줄 때, 우리는 다시 불 속으로 뛰어들 용기를 낼 겁니다.”
 

김란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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