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 다짐

인생은 짧다.
그러나 다시 희망을 선택한다
인생이 짧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감하는 순간은 대개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달력을 넘기다 문득 깨닫는 나이, 오래된 사진 속의 젊은 얼굴, 혹은 떠나간 사람의 부재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시간의 비정함을 체감한다.
철학은 오래전부터 이 덧없음을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다뤄왔다. 인간은 왜 이렇게 짧은 생을 살면서도 영원을 꿈꾸는 존재인가.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인생의 짧음을 비극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삶은 본래 길지도 짧지도 않으며,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밀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반면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의 유한성을 더욱 냉정하게 직시한다.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는 사실, 그 피할 수 없는 종착지가 오히려 삶의 의미를 발생시킨다는 논리다. 영원하다면 선택은 무의미해지고, 오늘은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한다.
덧없음은 그래서 공허함과 동시에 책임을 동반한다. 다시 오지 않을 하루, 되돌릴 수 없는 선택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이 유한성을 끊임없이 잊게 만든다는 데 있다.
더 많은 성취, 더 빠른 속도, 더 나중의 보상을 약속하며 현재를 유예시킨다.
그렇게 언젠가를 반복하다 보면, 정작 살아 있는 지금은 흘려보내기 쉽다.
그러나 새해는 늘 작은 균열을 만들어준다. 어제와 오늘이 물리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우리는 이 경계 위에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희망이란 거창한 미래의 보장이 아니라,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자기 허락에 가깝다.
인생이 짧기에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것을 다 이루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지 속도가 아니다.
바람직한 삶의 자세란 결국 유한함을 인정하면서도 체념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비교 대신 성찰을, 과잉 대신 절제를, 미루는 결심 대신 오늘의 작은 실천을 선택하는 것.
나만의 속도로 걷되,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여유. 성공보다 존엄을,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눈높이. 이것이 덧없는 인생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새해를 맞는다는 것은 시간이 새로워진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인생은 짧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희망을 말할 자격이 있다.
오늘을 성실히 살아내는 사람만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덧없음을 아는 사람은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이 새해에는 더 많이 가지려 애쓰기보다, 더 깊이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