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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가 심은 의사의 꿈, 남수단 첫 신경과 전문의로 돌아왔다…조셉 볼

성연주 기자
입력
‘울지마 톤즈’에서 시작된 꿈 현실로…故 권성현 씨 부모 6년 학비 후원, 국경 넘어 이어진 의료 인재 양성
남수단 최초의 신경과 의사가 된 조셉 볼(Joseph Bol)은 자신의 방에 고 이태석 신부의 사진을 걸어 놓고 의사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사진제공 이태석재단]
남수단 최초의 신경과 의사가 된 조셉 볼(Joseph Bol)은 자신의 방에 고 이태석 신부의 사진을 걸어 놓고 의사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사진제공 이태석재단]

영화 ‘울지마 톤즈’ 속 한 소년이 의사가 되어 돌아왔다. 이태석 신부를 만나 의사의 꿈을 키웠던 남수단 출신 조셉 볼(Joseph Bol)이 에티오피아에서 전문의 수련을 마치고 남수단 최초의 신경과 전문의가 됐다. 이태석재단은 지난 8월 18일 이 소식을 전했다.


조셉이 의사의 길을 선택하는 데에는 2001년부터 남수단 톤즈에서 의료와 교육 활동을 펼친 고(故) 이태석 신부의 영향이 있었다. 이 신부는 의료시설이 부족했던 현지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조셉도 그곳에서 의사의 꿈을 품었다.


시간이 흘러 조셉은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문의가 되기까지는 긴 교육과 수련 과정이 필요했다. 그 길에서 한국의 한 가족과 조셉의 삶이 만났다.


이루지 못한 의사의 꿈, 6년의 학비가 되다


고 권성현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백혈병 진단을 받고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하지만 끝내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성현 씨의 부모는 아들이 걷지 못한 길을 다른 청년이 이어가기를 바랐다. 이태석재단에 아들의 6년간 학비를 기부했고, 재단은 그 뜻을 담아 조셉을 ‘권성현 장학생’으로 선발해 전문의 과정을 지원했다.


조셉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대학교의 교육병원인 블랙 라이언 병원에서 신경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마침내 남수단 최초의 신경과 전문의가 됐다.


조셉의 방에 남아 있던 한 장의 사진


에티오피아에서 조셉을 만난 이태석리더십아카데미 구진성 대표는 그의 방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벽에 이태석 신부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구 대표는 조셉이 블랙 라이언 병원에서도 실력을 인정받는 의사였다고 전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태석 신부의 사진을 간직한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사진 한 장은 조셉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준다. 톤즈에서 만난 의사이자 사제의 모습은 소년 시절의 기억에 머물지 않았다. 그때 품은 꿈은 오랜 공부와 수련을 거쳐 현실이 됐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려드리겠다”


조셉은 자신의 공부를 지원한 권성현 씨 부모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두 분께 받은 사랑과 도움을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받은 도움을 앞으로 자신이 만날 환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다짐이었다.


성현 씨 부모의 기부 목적은 분명했다. 아들이 이루지 못한 의사의 꿈을 다른 청년이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태석재단은 장학생 선발과 교육 지원을 통해 그 뜻을 조셉의 전문의 수련으로 연결했다.


한 명의 장학생이 한 나라의 첫 신경과 전문의가 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의료 인력이 부족한 남수단에서 전문 진료를 담당할 자국 출신 의료인이 배출됐기 때문이다.


스승에게 배운 학생이 교수가 되고, 다시 조셉을 가르쳤다


조셉이 전문의가 되는 과정에는 또 다른 인연도 있었다. 하버드 의대 신경외과 전문의 박기범 교수다.


박 교수는 과거 에티오피아 블랙 라이언 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당시 박 교수에게 배운 학생이 훗날 교수가 됐고, 그 교수가 다시 조셉을 가르쳤다.


한 번의 교육이 다음 세대의 의료교육으로 이어진 셈이다. 박 교수도 앞으로 조셉이 전문의로 활동하고 성장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2001년 톤즈에서 시작된 시간이 2026년까지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이태석 신부는 2001년부터 남수단 톤즈에서 의료·교육·선교 활동에 헌신하다 2010년 선종했다.


그의 삶은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후 ‘울지마 톤즈 그 후-선물’, ‘스마일 톤즈’, ‘울지마 톤즈 2: 슈크란 바바’ 등이 제작되며 톤즈와 제자들의 이야기도 계속 전해졌다.


2020년 구수환 감독이 제작한 영화 ‘부활’은 이태석 신부 사후 10년이 지난 남수단과 제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조셉의 현재는 ‘울지마 톤즈’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한 명의 장학생에서 한 나라의 전문의로


조셉의 사례는 장기간의 교육 지원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의사를 비롯한 전문인력 양성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권성현 씨 부모는 한 청년이 공부를 이어갈 수 있도록 6년간의 학비를 지원했고, 조셉은 의학교육과 임상 수련을 거쳐 전문의가 됐다.


조셉의 사연은 유튜브 채널 ‘구수환PD의 공감36.5’에도 공개됐다. 영상은 공개 이틀 만에 조회 수 8만 회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태석 신부가 톤즈에서 의료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1년이었다. 2010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곳에서 시작된 교육은 사람을 통해 이어졌다.


그 사이에는 의사의 꿈을 이루지 못한 한국 청년이 있었고, 아들의 이름으로 다른 학생의 학업을 지원한 부모가 있었다. 에티오피아에서 후배 의료인을 가르친 의사와 그 배움을 다시 전한 교수도 있었다.


2026년, 영화 속 소년은 남수단 최초의 신경과 전문의가 됐다.


그리고 조셉의 방에는 여전히 이태석 신부의 사진이 걸려 있다.


소년이 바라보던 의사의 자리에, 이제 조셉이 서 있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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