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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봄을 세우는 시간이 오다

류재근 기자
입력
스스로 일어서는 마음의 다짐
입춘은 봄을 약속하지 않는다. 봄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일어서는 사람의 편이다.

입춘 — 스스로 일어서는 시간

 

겨울의 끝이 아닌, 마음의 시작을 알리다


 

입춘(立春)은 달력 위의 절기가 아니라 시간의 태도가 바뀌는 순간이다. 

아직 찬바람이 매섭고 눈이 남아 있지만, 입춘은 분명히 말한다. 봄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는 스스로 일어설 차례라고……

 자연은 누구의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방향을 바꾸고, 인간 역시 그 흐름 앞에서 결단을 요구받는다.


 

땅은 아직 얼어 있으나

씨앗은 이미 방향을 정했다

봄은 오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일어설 뿐이다


 

입춘은 ‘봄이 오는 날’이 아니라 ‘봄을 세우는 날’이다. 한자 그대로 ‘설 입(立)’ 자에는 멈춰 있던 것이 스스로 균형을 잡고 일어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입춘은 자연의 변화인 동시에 인간의 태도에 대한 은유다. 기다림의 계절이 끝나고, 준비된 침묵이 행동으로 전환되는 시점이다.


 

기상학적으로 보면 입춘 무렵은 한반도 기온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 단계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시기를 계절의 전환점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점으로 해석한다. 기후학자 김모 박사는 ‘입춘은 평균 기온의 변화보다 일조 시간과 생태 리듬이 달라지는 시점’이라며  ‘자연은 이미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고, 인간의 삶 역시 이 흐름을 감지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입춘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같은 글귀를 문에 붙였다. 단순한 길흉의 기원이 아니라, 새 출발을 스스로 선언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문화인류학자 이모 교수는 ‘입춘 글귀는 운을 빌기보다 태도를 세우는 문장’이라며 한 해를 외부 조건이 아닌 자신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겠다는 다짐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눈 녹는 소리는 작지만

계절은 그 소리를 믿는다

오늘의 결심 하나가

내일의 봄을 데려온다


 

현대 사회에서 입춘의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 많은 이들이 때를 기다리다 삶의 방향을 미루곤 한다. 그러나 입춘은 말한다. 완벽한 조건은 오지 않으며, 변화는 늘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된다고. 지금의 부족함 속에서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 그것이 입춘의 본질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자기기동(self-initiation)’의 시점이라고 부른다. 외부 자극이 아니라 내부 결단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실제로 새해 결심이 좌절된 이후, 입춘 전후에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다. 새해가 계획의 시간이라면 입춘은 실행의 시간인 셈이다.


 

입춘은 봄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말없이 요구한다. 이제는 스스로 일어설 것인가. 자연은 이미 움직였고, 시간은 방향을 바꾸었다. 남은 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아직 춥더라도, 아직 두렵더라도, 봄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일어서는 사람의 편이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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