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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끝났는데, 심판은 끝나지 않았다

성연주 기자
입력
마이크로닷 사례로 다시 묻는 ‘연좌제 이후의 사회’
[AI생성 이미지]
[AI생성 이미지]

부모의 죄는 자녀의 인생까지 책임져야 할까.
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의 대답은 여전히 망설인다.


범죄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는 원칙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연좌제는 금지된 제도이며,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이 원칙이 쉽게 흔들린다.


법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또 다른 처벌


수사와 재판이 끝나고, 형이 확정되거나 책임이 명확히 정리된 이후에도
사람들은 다시 심판대에 오른다.
이번에는 법정이 아니라 댓글과 여론, 검색창 앞에서다.


범죄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책임은 이미 법적으로 구분됐지만, 사회적 판단은 그 선을 넘는다.


이 지점에서 연좌제는 이름만 바꾼 채 되살아난다.


마이크로닷 사례가 남긴 질문


래퍼 마이크로닷은 부모의 과거 범죄가 알려진 이후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공개 사과를 했다.
그가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회는 그를 사건과 분리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논란은 반복적으로 소환됐다.
활동 재개 여부와 상관없이, 그는 여전히 ‘사건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 사례는 한 연예인의 복귀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비가담 가족을 어디까지 책임의 범위로 포함시키는가’를 묻는다.


연좌제 비판은 면죄부가 아니다


연좌제를 문제 삼는다고 해서
범죄를 가볍게 보자는 뜻은 아니다.
가해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다만 그 책임이
법적으로 정리된 이후에도
혈연과 관계를 이유로 무기한 확장되는 순간,
사회는 정의가 아닌 낙인으로 작동한다.


책임의 범위가 흐려질수록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처를 만든다.


‘법 이후의 사회’는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법은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더 엄격한 제도를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끝난 판단 이후에도
끝없는 배제와 비난이 이어지는 사회는
결코 더 건강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죄가 아닌 사람을 언제까지 죄의 그림자 속에 둘 것인지,
책임의 원칙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지.


연좌제를 금지한 것은 법이지만,
그 정신을 지켜야 할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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