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38년째 영등포 쪽방촌을 지키는 한 목사의 선택
![[사진제공 광야교회 홈페이지]](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51229/1766935854301_892243143.jpg)
서울 영등포 쪽방촌. 좁은 골목과 낡은 건물들이 이어진 이곳에는 오랜 시간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알코올 중독, 가족 해체, 질병과 상실. 삶의 무게에 주저앉은 이들 곁을 38년째 묵묵히 지켜온 사람이 있다. 광야교회 임명희(66) 담임목사다.
임 목사가 쪽방촌에 발을 들인 것은 1987년. 그는 “노숙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한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돌아온 것은 환영이 아니라 조롱과 경계의 시선이었다. 설교를 해도 귀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았고, 때로는 거친 말과 냉소가 돌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가르침’보다 ‘함께 있음’이었다.
매주 골목을 돌며 안부를 묻고, 예배에 나오지 못한 이들의 사정을 살폈다. 술에 취해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밥 한 끼를 함께 나누며 다시 방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곁을 지켰다. 임 목사는 “사람은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며 “누군가 포기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면 조금씩 달라진다”고 말한다.
쪽방촌 사람들 역시 그의 진심을 알아봤다.
“목사님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이분이 최고다”라는 말이 주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신앙의 언어보다 삶의 태도로 신뢰를 쌓아온 결과다.
임 목사의 사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광야교회의 무료급식이다.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서 운영되는 이 급식 현장에는 매일 긴 줄이 늘어선다. 방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밀려난 이들, 오랜 노숙과 질병, 알코올 문제로 삶의 중심을 잃은 사람들이 하루 한 끼를 위해 모인다.
광야교회가 정기적으로 돌보는 노숙인은 약 200여 명, 하루 평균 식사에 참여하는 인원은 1천200~1천300명에 이른다. 추운 날씨에도 줄은 끊이지 않는다. 말없이 식판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는 이들의 얼굴에는 각자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무료급식은 결코 작은 규모의 활동이 아니다. 한 끼 식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최소 50만 원, 하루 식비만 약 150만 원에 달한다. 한 달로 계산하면 4천500만~5천만 원가량이 필요하다. 재정적 부담은 늘 뒤따르지만, 임 목사는 문을 닫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는 노숙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거리로 다시 나가고, 술에 기대는 시간이 반복되더라도 식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것이 이 사역의 기본 원칙이다. “사람이 변화하는 속도는 매우 느리고, 그 변화는 늘 ‘조금씩’ 일어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광야교회는 이 공간을 시혜의 장소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자리로 정의한다. 예배보다 먼저 밥을 나누고, 설교보다 먼저 안부를 묻는다. 임 목사는 교회의 역할은 건물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있어 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식사를 마친 노숙인들은 이 시간이 자신들에게 기쁨이자 힘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여기서 사람 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광야교회의 무료급식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거리에서 잃어버린 존엄을 잠시나마 회복하는 시간이다.
38년째 이어진 임명희 목사의 사역은 화려하지 않다. 성과를 숫자로 증명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가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들을 맞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은 버려진 존재가 아니며, 누군가 끝까지 곁에 있어 줄 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영등포 쪽방촌의 하루는 여전히 고단하다.
하지만 매일 차려지는 이 식탁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누군가 끝까지 곁을 지킬 때, 삶은 아주 천천히라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