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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밥퍼’, 법정에선 웃었지만 현장에선 갈등 지속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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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승소에도 청량리 주민 반발…공공성·주거권 사이의 숙제
최일도 목사.[사진제공 다일공동체 홈페이지]
최일도목사 [사진제공 다일공동체 홈페이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에서 30년 넘게 무료급식을 이어온 ‘밥퍼나눔운동본부’가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무허가 가건물 증축을 이유로 한 지자체의 철거·행정처분이 부당하다는 판단이다. 판결은 2025년 12월 19일 선고됐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현장에서는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일부 주민들이 무료급식소 운영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공공성’과 ‘생활권’이 충돌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4년 법정 다툼 끝낸 밥퍼…“행정 처분 과도”


밥퍼는 1988년 답십리 굴다리 인근에서 시작된 무료급식소로, 현재는 청량리역 인근에서 홀몸 어르신과 노숙인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운영은 자원봉사와 후원에 의존한다.


이번 소송은 시설 일부가 무허가 가건물이라는 이유로 철거 명령과 고발이 이뤄지며 시작됐다. 밥퍼 측은 공익 목적의 시설이라는 점과 행정처분의 비례성 문제를 제기했고,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공공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행정권 남용의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판결문 전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앞두고 증폭된 지역 갈등


하지만 판결 이후에도 지역 내 긴장은 완화되지 않았다. 성탄절인 25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청량리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밥퍼는 폐쇄돼야 한다”는 글이 게시됐다가 논란 끝에 삭제됐다.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숙인과 고령층의 행렬 사진도 함께 올라왔다.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밥퍼에 식자재를 기부하거나 봉사하는 인근 상점에 대한 ‘불매’ 주장까지 거론되고 있다. 실제로 후원을 이어오던 상점이 압박을 느껴 문을 닫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혐오시설로 낙인…마음 아픈 현실”


밥퍼 측은 이러한 분위기에 깊은 상처를 받고 있다. 다일복지재단 관계자는 “일부 주민이 밥퍼를 ‘혐오시설’로 부른다”며 “아이들 통학로에 노숙인이 보인다는 이유로 학교에 민원을 제기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밥퍼는 평일 위주 배식, 쓰레기 수거 강화 등 자체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200여 명의 봉사 인력만으로 노숙인의 돌발 행동이나 개인적 음주 문제까지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지자체·경찰의 역할 공백 논란


관할 동대문구와의 관계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과제다. 밥퍼 측은 “행정소송 이후 구청의 질서 유지 협조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주장한다. 경찰 역시 노상방뇨 등 경미한 사안 외에는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복지 현장의 부담이 민간 봉사자들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 “공공성도, 주민 피해도 모두 현실”


전문가들은 어느 한쪽의 주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부 이용자의 행동이 민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먼저 자리 잡은 복지시설에 대해 나중에 들어온 주거시설이 일방적으로 퇴출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길거리 배식 중심의 모델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절기에 줄을 세우는 방식은 인권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식당형 급식 등 대안적 모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밥퍼 “밥은 멈추지 않는다”


밥퍼는 갈등 속에서도 급식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종교와 국적, 나이를 묻지 않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내일도 밥과 국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법정에서는 승소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숙제가 남아 있다. 밥퍼의 문제는 한 시설의 존폐를 넘어, 도시 재개발 속에서 공공복지가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도시는 바뀌었고, 풍경도 달라졌다.
그러나 배고픔은 개발보다 느리게 사라진다.
밥퍼 앞 줄은 갈등의 상징이 아니라 질문이다.
누구를 품을 것인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그 답을 찾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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