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발자취 이태석 신부

“사랑은 나눌수록 깊어진다” 삶으로 보여주다
한 손에는 청진기를, 다른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 그가 도착한 순간부터 그곳은 ‘사랑의 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고(故) 이태석 신부.
그는 의사였고, 교사였으며, 음악가였고, 동시에 한없이 따뜻한 이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었지만, 더 큰 사랑을 전하기 위해 사제의 길을 택했다. 그가 2001년 남수단 톤즈로 떠났을 때, 그곳은 병원도, 학교도, 희망도 없던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묵묵히 그들의 손을 잡았다.
직접 병원을 짓고,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았으며, 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쓰러진 건물을 일으켜 세우고, 금이 간 마음들을 음악으로 어루만졌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라는 말을 삶으로 전했다.
그의 사랑은 조건이 없었다. 피부색도, 언어도, 종교도 그의 사랑 앞에서는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했다. 병든 아이를 위해 새벽마다 찾아가고, 맨발의 소년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던 그 모습은 톤즈 주민들의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빛이 되었다.
하지만 2008년,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그는 조용히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았고, 2010년 1월 14일, 향년 4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중 하나는 “아이들이 괜찮을까...”였다. 끝까지 자신이 아닌, 타인을 걱정했다.
그의 삶은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로 세상에 알려졌고, 2012년 설립된 이태석재단은 지금까지도 그의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재단은 남수단 현지에 의료·교육 지원을 계속하며, 전 세계에 나눔의 물결을 확산시키고 있다.
2025년에는 무산문화대상 사회문화 부문을 수상하며, 그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태석 신부는 떠났지만, 그의 사랑은 여전히 살아 있다. 나누고, 헌신하며,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그는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발자취 위에 오늘도 또 다른 사랑이 피어나고 있다.
[사랑의 유산] “신부님이 제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 이태석 신부의 제자들, 이제는 누군가의 희망이 되다
한때 맨발로 학교 앞에 서 있던 아이들이, 지금은 의사 가운을 입고 사람들의 생명을 돌보고 있다. 이태석 신부의 따뜻한 손길을 받았던 남수단 톤즈의 아이들이, 그 사랑을 이어 또 다른 생명을 살리고 있다.
고(故)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 오지 마을 톤즈에서 헌신한 시간은 단 8년.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제자들 중 일부는 의사가, 교사가, 지역 리더로 자라났다. 말라리아와 전쟁으로 고통받던 어린 시절, “너는 소중한 사람”이라며 손을 잡아주던 그 한 사람의 사랑이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것이다.
제임스 가루앙,
현재 남수단 주바 대학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신부님은 저에게 미래를 주셨습니다. 제가 공부할 수 있도록 학비를 대주시고, 늘 말씀하셨죠. ‘네가 언젠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지금 저는 매일 그 꿈을 실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