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복합 만성 질환 실태

성인 복합 만성질환 확산 — 예방·관리의 새 기준은
‘혈압약은 기본이고, 당뇨 전 단계라 식단도 관리하죠. 그런데 허리 통증 때문에 운동은 줄고, 잠이 안 와서 더 피곤해져요.’
서울 마포구에 사는 50대 직장인 김모 씨는 자신을 약과 검사 사이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한 가지 만성질환만으로도 생활이 바뀌는데, 최근 성인들 사이에서는 고혈압·당뇨·고지혈증·비만·지방간·퇴행성 관절질환·만성신장질환·우울·불면 같은 문제가 동시에 겹치는 복합 만성질환(다질환)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질병의 시대가 아니라 ‘동반 질환 조합’의 시대라는 말이 나온다.
고혈압·당뇨만이 아니다 — 만성통증·우울·수면장애까지 함께 간다
복합 만성질환의 특징은 한 질환이 다른 질환의 위험을 끌어올리며 악순환을 만든다는 점이다.
예컨대 복부비만이 쌓이면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져 당뇨 위험이 커지고, 혈관 염증이 지속되면 고혈압·고지혈증이 동반되기 쉽다. 이런 상태에서 수면이 깨지면 식욕 조절 호르몬이 흔들리고, 피로로 인해 활동량이 줄어 체중이 더 늘 수 있다.
여기에 만성통증이 더해지면 운동 회피가 굳어지고, 우울·불안이 겹치며 관리가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복합 만성질환은 단순히 병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무너진 상태를 의학적 문제로 표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체중·혈당·지방간이 ‘한 세트’가 된 40대
IT 회사에 다니는 40대 박모 씨는 건강검진에서 지방간과 고중성지방, 공복혈당 상승을 함께 진단받았다.
그는 ‘야근 후 배달음식, 주말엔 앉아서 쉬는 습관이 몇 년 쌓였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의사는 생활 패턴 자체를 치료 대상으로 봤다. 내분비내과 전문의 A씨는 “이 단계는 약보다 ‘환경 처방’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며 “식사시간을 앞당기고, 주 3회 30분만 걷기부터 시작해도 간 수치와 혈당이 동시에 좋아지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심혈관 위험에 ‘신장’이 연결되는 60대
은퇴 후 택시를 모는 60대 이모 씨는 오랜 고혈압에 당뇨가 더해졌고, 최근에는 신장 기능 저하 소견까지 들었다.
그는 ‘혈압만 잡으면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심장내과 전문의 B씨는 혈압·혈당·지질 중 하나만 조절해선 부족하다며 ‘복합 만성질환은 장기들이 연결된 네트워크 문제라, 신장 보호를 포함해 목표를 통합적으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진료 현장에서는 약을 늘리는 것보다, 중복 처방을 줄이고 우선순위를 세우는 ‘약 정리(폴리파마시 관리)’가 핵심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화만이 아니라 생활 방식의
구조화가 더 큰 문제
복합 만성질환 증가의 배경에는 고령화뿐 아니라 장시간 앉아있는 직업 환경, 불규칙한 식사, 수면 부족, 만성 스트레스, 음주 문화, 초가공식품 섭취 증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3050대는 아프진 않은데 건강하진 않은상태가 오래 지속되며 여러 위험요인이 누적되기 쉽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C씨는 ‘만성질환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며 ‘혈압·혈당·체중·수면·활동량 같은 신호가 35년 이상 동시에 나빠질 때, 결국 복합 질환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한 가지가 아니라 ‘패키지’로 접근해야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원칙은 세 가지다.
첫째, 기준을 체중 하나가 아니라 ‘대사 건강’으로 잡기.
체중이 크게 변하지 않아도 허리둘레, 혈압, 공복혈당, 중성지방, HDL 콜레스테롤을 함께 보면 위험을 더 빨리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생활요법을 의지가 아니라 ‘설계’로 바꾸기.
퇴근 후 운동이 어려우면 점심 후 10분 걷기,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2~3층, 주 2회 근력운동(맨몸 스쿼트·밴드)처럼 실행 가능한 단위로 쪼개야 지속된다.
셋째, 정신건강과 수면을 ‘부가 영역’이 아니라 치료 축으로 포함하기.
불면과 우울은 약 복용 순응도와 식습관을 무너뜨려 만성질환 조절을 어렵게 만든다.
영양사 출신 건강코치 D씨는 복합 만성질환 관리의 현실적 목표는 완벽이 아니라 일관성이라며 ‘일주일에 5일을 70점으로 사는 것이 1일 100점보다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료진은 환자에게 전부 끊기보다 덜 먹기·앞당기기·대체하기를 권한다. 예컨대 야식 빈도를 줄이고, 단 음료를 물이나 무가당 차로 대체하며, 탄수화물은 흰쌀밥 단독보다 잡곡·단백질·채소를 함께 먹는 방식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동네의원·보건소·직장 건강프로그램 - 연결이 관건
복합 만성질환은 진료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치료는 시작이지만 지속은 일상에서 이루어진다.
전문가들은 ‘동네의원 중심의 장기 추적관리, 보건소의 운동·영양 프로그램, 직장의 건강지원 제도’가 서로 연결될 때 효과가 크다고 본다. 특히 1차 의료 현장에서는 정기 모니터링(혈압·혈당·체중·약 부작용 점검)과 약 복용의 단순화, 개인별 목표 설정이 중요한 전략으로 꼽힌다.
복합 만성질환의 시대,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결심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오늘의 10분 걷기와 30분 일찍 잠드는 습관이 내일의 약 한 알을 줄일 수 있다.
의료진이 제시하는 최종 목표는 단순하지만 의미 심장하다.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병이 겹쳐도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관리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