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할퀸 일상에 ‘최대 5억원’ 복구자금

개인 긴급 생활자금 최대 5000만원·중소기업 등 운전자금 최대 5억원
상환 유예부터 구호 텐트·급식차·생필품까지 피해 현장 지원
17일 경남 거제시 옥포동의 도로가 거센 비에 잠겼다. 물이 빠진 뒤에도 주민과 상인들이 마주해야 할 것은 젖은 집과 가게, 그리고 당장 이어가야 할 생활이다. 남부 지역을 덮친 폭우 피해가 커지자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이날 피해 고객을 대상으로 긴급 금융지원에 들어갔다.
지원의 첫 축은 피해 가계의 생활 안정이다. 하나은행은 개인 대출 고객에게 최대 5000만원, 신한은행은 최대 3000만원의 긴급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한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최대 2000만원을 한도로 정했다.
폭우 피해는 가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침수된 사업장과 영업 차질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개인사업자의 현금 흐름을 빠르게 악화시킬 수 있다.
4개 은행은 이들을 대상으로 최대 5억원의 운전자금을 지원한다. 적용되는 특별 우대금리는 1.3~1.5%포인트 수준이다. 건물과 설비 등 피해 시설을 다시 갖추는 데 필요한 시설자금 지원도 병행한다.
대출 만기를 앞둔 피해 고객에게는 상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 마련됐다. 추가적인 원금 상환 없이 우대금리를 적용해 대출 기한을 연장하거나, 일정 기간 분할상환금 납입을 미룰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수해 직후에는 복구비와 생계비가 한꺼번에 필요하다. 영업을 멈춘 자영업자는 매출이 끊겨도 임차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를 감당해야 한다. 가계 역시 주거시설과 차량, 생활용품 피해가 겹치면 예상하지 못했던 지출을 떠안게 된다.
이번 금융지원이 대출 공급에 그치지 않고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함께 담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구가 시작되는 시기에 기존 채무 상환 일정까지 겹치지 않도록 피해 고객의 자금 운용 시간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은행들은 창구 밖에서도 피해 지역을 찾는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을 위해 구호 텐트를 지원하고 추가 구호 물품도 제공할 계획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주민들의 임시 생활에 필요한 기반을 보태기 위한 현장 지원이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피해 복구 현장에 급식 차량을 투입하기로 했다. 대상은 이재민뿐 아니라 복구 작업에 나선 소방대원과 구호 인력까지 포함된다.
물이 빠진 자리를 치우는 작업은 짧게 끝나지 않는다. 침수된 가재도구와 토사를 걷어내고 도로와 시설을 정비하는 동안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한 끼 식사는 가장 기본적인 지원 가운데 하나다.
하나은행은 담요와 세면도구 등 생활필수품과 의약품을 담은 ‘행복 상자’ 500개를 전달할 예정이다. 갑작스러운 대피로 필요한 물품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이재민들의 임시 생활을 돕는 데 목적을 뒀다.
우리은행은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준비한 재난 구호 키트를 피해 주민들에게 제공한다. 피해 규모를 살핀 뒤 기부금 지원 여부도 검토할 방침이다.
우리금융 계열사들도 상환 부담을 낮추는 지원에 합류했다.
우리카드는 피해 고객의 카드 결제대금을 최장 6개월까지 유예한다. 수해 이후 발생한 연체 이자를 면제하고 관련 연체 기록도 삭제하기로 했다.
우리금융캐피탈은 피해 고객의 대출 원금 납입을 최대 6개월 유예하고 연체 이자를 면제한다. 우리금융저축은행은 대출 원리금 상환을 3개월 미루고 대출 만기는 최장 6개월 연장한다.
이번 지원은 같은 수해 피해를 대상으로 하지만 은행마다 개인 생활안정자금 한도와 세부 조건은 다르다. 실제 지원 여부와 금리, 필요 서류 등은 피해 사실 확인과 각 금융회사의 심사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신청 전 확인이 필요하다.
재난이 지나간 자리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일상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다.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긴급자금과 상환 유예는 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망에 가깝다. 구호 텐트와 급식차, 생필품은 그보다 더 가까운 자리에서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도록 돕는다.
17일 거제 옥포동의 물에 잠긴 도로는 이번 폭우가 남긴 피해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물은 도로와 집, 가게의 경계를 가리지 않았다.
이제 복구의 시간이다. 젖은 물건을 걷어내고, 멈췄던 가게 문을 다시 열고, 대피했던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하루 만에 끝나지 않는다.
그 긴 복구의 길에서 금융은 숫자로 시작한다. 2000만원, 3000만원, 5000만원, 그리고 최대 5억원이다.
복구에는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이번 금융지원이 피해 주민과 소상공인들이 무너진 일상을 추스르고 다시 생활과 생업의 자리로 돌아가는 데 실질적인 버팀목이 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