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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초등학생, 학업 스트레스

류재근 기자
입력
처방전이 필요해진 초등 교실
초등학생의 마음 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교육의 책임이다


 

초등학생에게 처방전이 필요해진 교실 —
 

학업 스트레스가 만든 우울한 어린이들의 초상


 

초등학생에게 우울증과 불안장애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거 사춘기나 성인기의 문제로 여겨졌던 정신과 진료가 이제는 초등 저학년까지 내려오고 있다. 학업 스트레스, 과도한 경쟁, 부모와 사회의 기대가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짓누르면서, 정신과 약을 처방받는 초등학생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A군은 매일 아침 등교 전 복통과 두통을 호소한다. 병원 검사 결과 신체적 이상은 없었지만, 소아정신과에서는 학업 불안에 따른 우울 증상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받아쓰기, 수행평가, 학원 숙제에 대한 압박이 누적되면서 아이는 ‘학교에 가면 숨이 막힌다’고 표현했다. 결국 A군은 불안 완화를 위한 약물치료와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예외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계에 따르면 최근 5~10세 아동의 우울·불안 관련 진료 건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특히 사교육 비중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이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더 높게 나타난다.

 초등학생의 하루는 이미 작은 입시생에 가깝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이동하고, 저녁에는 숙제와 예습·복습이 이어진다. 놀이는 선택이 아니라 사치가 되고, 성적은 곧 자기 가치로 연결된다.


 

교육 현장 역시 아이들의 심리적 부담을 키우는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행평가 확대, 잦은 시험, 비교 중심의 평가 방식은 아이들에게 끊임없는 긴장을 요구한다. 여기에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부모의 불안이 덧씌워지며, 아이들은 실패를 견디는 힘을 기를 기회조차 잃고 있다.


 

문제는 약물 처방 자체보다, 그 배경에 있는 사회적 구조다. 전문가들은 ‘약은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한다. 아이가 아픈 것이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병들어 있다는 것이다. 경쟁 중심 교육, 결과 위주의 평가, 불안을 전가하는 양육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약을 먹는 아이들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왜 아이가 약을 먹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아이가 그렇게까지 버텨야 했는가’다. 초등학생의 마음 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교육의 책임이다. 

아이들이 성적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교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늘어날 때 비로소 아이들의 처방전은 줄어들 것이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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