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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건강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바로 - 돈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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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이나 의료기술이 아니다
건강을 공공의 가치로 본다면 의료비 지원을 넘어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돈이 건강을 좌우한다 - 한국인의 건강을 가르는 결정적 변수의 변화


 

한국 사회에서 건강은 타고난 체질이나 유전의 문제라는 인식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최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건강 인식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이 체감하는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유전이나 의료기술이 아니라 경제적 여건, 즉 돈이 꼽혔다.

 

 건강을 개인의 관리 능력이나 생활습관의 문제로만 보던 시각에서 사회·경제적 구조가 건강을 결정한다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소득 수준에 따라 기대수명, 만성질환 유병률, 정신건강 상태가 뚜렷하게 갈린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득이 낮을수록 고혈압·당뇨·비만 같은 만성질환을 동시에 앓을 가능성이 높고, 우울감이나 스트레스 지수 역시 상승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이는 단순히 의료 접근성의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거 환경, 노동 조건, 식생활, 여가와 휴식의 가능성 등 삶의 전반적 조건이 건강에 누적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저소득층은 건강에 불리한 환경에 더 자주 노출된다.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고용은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어렵게 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열량·저영양 식품에 의존할 가능성을 높인다. 

예방적 건강검진이나 조기 치료 역시 비용 부담 때문에 미뤄지기 쉽다.

 반면 소득이 높은 계층은 운동 시설, 건강한 식재료, 양질의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여지가 크고, 이는 장기적으로 건강 격차를 확대시키는 요인이 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문제로 규정한다. 

한 보건정책 전문가는 ‘건강은 병원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음식을 먹고 얼마나 쉴 수 있는지에 따라 형성된다’며  

‘소득 격차는 곧 건강 격차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특히 한국처럼 경쟁적 노동 구조와 높은 주거비 부담을 안고 있는 사회에서는 

경제적 스트레스 자체가 만성 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정책 방향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보고서는 개인의 생활습관 개선을 강조하는 기존 건강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짚는다. 

금연·절주·운동 캠페인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주거 안정, 노동 시간 단축, 지역 간 의료 격차 완화, 취약계층 맞춤형 건강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수록, 사회적 약자는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된다.


 

의료 현장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의 소득과 생활 여건에 따라 치료 결과가 달라진다.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생활습관을 바꾸려면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건강 관리 능력 자체가 이미 사회적 자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결국 ‘돈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인식은 체념이 아니라 문제 제기의 출발점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넘기 힘든 구조적 장벽을 사회가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건강을 공공의 가치로 본다면, 의료비 지원을 넘어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건강 격차를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공동체의 책임으로 끌어안을 것인지가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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