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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산타

라면 상자에 담긴 이름 없는 온정

안성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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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수원시청 앞에 놓이는 ‘익명의 기부자’, 공직자들을 향한 조용한 응원의 마음
익명의 기부자가 수원시청 앞에 두고 간 컵라면 박스. [사진제공 수원시]
익명의 기부자가 수원시청 앞에 두고 간 컵라면 박스. [사진제공 수원시]

 

새벽의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각, 수원시청 본관 앞에 또다시 라면 상자가 차곡차곡 쌓였다. 익명의 한 시민이 7년째 이어오고 있는 ‘조용한 기부’의 흔적이다. 56상자의 컵라면과 한 장의 손편지 — 그 어떤 홍보도, 이름도 없이, 오직 ‘고마움’과 ‘응원’만이 남았다.

 

이 시민은 자신을 “수원 광교 주민”이라만 밝히며, 편지 속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산불 예방을 위해 고생하는 공직자분들께 작은 간식을 드리고 싶습니다.” 7년 전 광교산 산불 당시, 진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던 시청 직원들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는 그는 그 이후로 해마다 같은 장소에 라면을 두고 사라졌다. 그가 남긴 흔적은 단 한 줄의 서명조차 없지만, 진심은 매년 봄과 겨울의 경계마다 변함없이 찾아온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7년 동안 이어진 그 정성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며 “라면보다 더 큰 온기가 수원 전체를 따뜻하게 감싼다”고 말했다. 시는 기부받은 컵라면을 산불 예방과 감시 활동에 나선 공직자들에게 전달했다. 이 기부자는 지난해에도 33상자의 컵라면을 같은 이유로 두고 갔으며, 지난 7년간 수원시청과 119안전센터, 보건소 등에 전달한 라면만 1000상자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나이는, 직업은,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매년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라면 상자’가 놓인다는 사실만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누군가는 “이건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도시의 마음을 지탱하는 한 줄기 온기”라고 말한다.


그 새벽의 상자 위에는 아마도 따뜻한 손의 체온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그 마음은, ‘누군가를 위하는 일에는 이름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든 라면 상자 하나가 공직자들의 피로를 녹이고, 시민의 마음을 잇는다. 나눔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꾸준히 이어지는 믿음이라는 걸 이 익명의 기부자가 보여주었다. 세상은 오늘도 그 한 사람 덕분에 조금 더 따뜻해졌다.

 

안성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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