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주사제 돌풍…피트니스 산업, 위기인가 전환점인가

세계 다이어트 시장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살을 빼려면 결국 운동과 식단 관리가 답이다”라는 믿음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몇 년 새 주사 한 번으로 식욕을 억제하고 체중을 감량할 수 있는 비만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풍경이 달라졌다.
이 변화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기존 피트니스 산업과 건강 관리 패러다임 전체를 흔들고 있다.
주사제가 바꿔 놓은 시장 판도
대표적인 다이어트 프로그램인 "웨이트워처스(Weight Watchers)"는 한때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칼로리 계산과 공동체적 지원”이라는 방식을 통해 체중 관리의 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회원 수가 급감했고, 결국 파산보호 신청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몰리게 되었다.
그 자리를 빠르게 메운 것이 바로 "오젬픽(Ozempic)"과 "마운자로(Mounjaro)" 같은 체중 감량 주사제다.
이 약물들은 체내의 호르몬(GLP-1)을 모방해 뇌의 식욕 신호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머릿속에서 음식에 대한 잡음이 사라졌다”는 사용자들의 증언처럼, 의지와 관계없이 식욕 자체를 줄여 체중을 빠르게 감소시킨다. 이 단순하면서도 즉각적인 효과는 수많은 다이어트 실패 경험을 가진 소비자들에게 매혹적인 대안으로 다가왔다.
피트니스 산업의 위기감
다이어트 주사제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피트니스 업계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첫째, 운동과 식단 관리가 다이어트의 기본 공식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흔들린다.
둘째, 소비자의 지갑이 제약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헬스장 회원 모집이 더 어려워진다.
셋째, 정책 변화도 약물 중심으로 흐르면서 정부 지원마저 줄어들 수 있다.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는 과거 비의료적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환자를 보내던 관행을 줄이고,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약물 처방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다이어트 = 운동과 의지’라는 전통적인 등식이 정책 차원에서도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쟁자’일까 ‘협력자’일까
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비관적인 전망만 내놓는 것은 아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미국의 고급 피트니스 체인 "이쿼녹스(Equinox)"는 2024년 초부터 주사제 사용자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GLP-1 프로토콜"이라 불리는 루틴은 단순히 체중을 빼는 데 그치지 않고, 빠른 감량으로 인한 근육 손실을 막기 위해 근력 운동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를 ‘오젬픽 운동(Ozempic exercise)’이라고 명명하며, 약물과 운동을 결합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인스파이어360 조사에 따르면 GLP-1 사용자 중 42%는 오히려 운동량을 늘렸다고 답했다. 주사제가 체중 감량의 문을 열어주었고, 운동이 건강 유지와 체형 관리의 수단으로 더 절실히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심리 변화
주사제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반복된 다이어트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매번 요요현상에 시달리고 자기혐오에 빠졌던 이들에게 주사제는 마치 “마지막 구원 카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소비자들 역시 주사만으로는 완전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고 있다. 살은 빠질지 몰라도, 체력이 떨어지고 근육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피트니스 업계의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다. “주사로 빼고, 운동으로 유지한다”는 방식이 자리 잡을 수 있다. 즉, 제약 산업과 피트니스 산업이 단순한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 관계로 재편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운동이 주는 가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체중 감량이라는 측면만 놓고 본다면 주사제가 운동을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운동은 단순히 다이어트 수단이 아니다. 근육량을 늘리고 신체 기능을 유지한다. 정신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기여한다. 공동체적 소속감과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삶의 질’ 차원의 가치는 약물로 대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주사제가 가져간 것은 ‘다이어트’일 뿐 ‘웰빙’은 아니다.
앞으로의 과제
피트니스 산업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주사제를 ‘위협적인 경쟁자’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운동의 본질적 가치를 재정의할 것인가.
앞으로 운동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히 체중 감량 시장을 붙잡으려 하기보다, 건강·웰빙·삶의 균형이라는 더 넓은 영역에서 자신의 위치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주사제 열풍은 분명 기존 시장의 균열을 불러왔지만, 동시에 운동의 본질적 가치를 드러내고 재조명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