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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에도 가격은 올리지 않았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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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앞 1천원 버거로 남긴 약속, ‘영철버거’ 이영철씨 별세
[사진제공 나무위키]
[사진제공 나무위키]

 

고려대 앞에서 1000원짜리 버거를 팔며 학생들과 약속을 지켜온 ‘영철버거’ 대표 이영철씨가 13일 별세했다. 향년 58세. 이씨는 암 투병 끝에 이날 세상을 떠났으며,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씨는 2000년대 초 고려대 앞 노점에서 햄버거를 팔기 시작했다. 당시 수중에 남은 돈은 2만2000원. 신용불량자 신분으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그는 손수레를 놓고 학생들을 향해 버거를 내밀었다. 가격은 처음부터 끝까지 1000원이었다.

 

“싸게 팔겠다”가 아니라 “올리지 않겠다”는 선택

 

영철버거는 화려한 레시피나 마케팅으로 알려진 가게가 아니었다. 핫도그빵 사이에 고기볶음과 채소를 넣은 투박한 방식. 그러나 한 가지 원칙만큼은 분명했다. 원재료 값이 올라도 가격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돼지고기를 등심으로 바꿨을 때도, 채소 가격이 급등해 버거 한 개당 손해가 발생했을 때도 이씨는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실제로 한때는 한 개를 팔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도 ‘1000원’이라는 약속을 지켰다.

 

장사는 생계였지만, 기부는 선택이었다

 

이씨는 2004년부터 고려대에 매년 장학금을 기부했다. 금액은 연간 약 2000만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됐다. 정기 고연전 기간에는 버거 수천 개를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기부의 이유에 대해 그는 생전에 “학생들에게 받은 마음을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사는 생계를 위한 일이었지만, 나눔은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는 설명이었다.

 

위기 때 지켜준 건 학생들이었다

 

2015년, 영철버거는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이때 움직인 것은 학생들이었다. 고려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자발적으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고, 2500명 넘는 참여로 약 6800만원이 모였다.

 

이후 영철버거는 재개업에 성공했다. 이씨는 감사의 뜻으로 ‘돈 워리(Don’t worry)’라는 메뉴를 내놓았다.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학생들과 같이 버텨온 시간”

 

이씨는 한 인터뷰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 의지할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공감하면서 서로 버텨온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학생들은 그를 ‘사장님’이 아닌 ‘영철 아저씨’로 불렀다. 계산대 너머의 상인이 아니라, 학교 앞 풍경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가게가 아니라 태도였다

 

이영철씨의 삶은 거창한 성공담은 아니었다. 대신 지키지 않아도 됐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기록이었다. 가격을 올리지 않는 선택, 꾸준한 장학금 기부, 위기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태도. 그 모든 것이 학생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영철버거는 하나의 가게였지만, 이씨는 하나의 기준이었다.
돈보다 약속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
버거보다 마음을 먼저 건넸던 사람.
고려대 앞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그 기준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일상에 조용히 남아 있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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