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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피라미드를 생각한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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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문명과 압축 성장, 그 빛과 그림자
과거 문명의 유산을 거울 삼아 우리의 빛을 더 넓고 고르게 비추자

• 이집트 피라미드와 한국 발전의 상관성에서 비추어 본 ‘빛과 그림자’

 

—고대 문명의 거석 앞에서 오늘의 한국을 돌아보다


수천 년 전 사막 위에 우뚝 선 이집트 피라미드는 인간 문명의 가능성과 한계가 동시에 새겨진 거대한 기록물이다. 피라미드는 압도적 기술력과 조직력의 산물이었지만 그 뒤에는 절대권력의 집중, 막대한 자원의 소모, 계층 간의 극심한 격차가 존재했다. 오늘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이 고대 문명의 그림자가 놀랄 만큼 선명하게 겹쳐진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인정한 경제·문화 강국으로 성장했다. 짧은 시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경험한 나라는 드물다. 


ICT 기술과 제조업, 문화 콘텐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로 자리잡으며 ‘현대판 피라미드’를 빠르게 축조한 셈이다. 세계가 놀랄 만큼의 속도와 효율성은 한국 발전의 ‘빛’이었다.

그러나 피라미드가 위대한 문명의 상징인 동시에 노동과 희생의 총합이었던 것처럼, 한국의 발전 역시 그늘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과도한 경쟁 구조다. 피라미드 건설을 위해 한정된 엘리트가 지시하고 다수가 동원되었던 것처럼 한국 사회도 고속 성장을 위해 장시간 노동, 교육 경쟁, 조직 중심의 생활을 당연시해 왔다. 그 결과 삶의 질 저하, 청년층의 소진, 노동 시장의 분절이 보이지 않는 비용이 되었다.

 

둘째는 권력과 자원의 집중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정치·종교·경제를 절대적으로 통합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경제력과 행정 권한이 대기업·중앙정부·특정 산업에 집중되며 지역·세대 간 격차가 커졌다. 부동산 구조, 대기업 중심 산업 체계, 수도권 쏠림 현상은 현대판 권력의 중심부를 만들었다.

 

셋째는 지속 가능성의 문제다. 피라미드는 놀라운 기술의 결정체였지만 그 사회가 미래 세대를 위해 준비한 것은 거의 없었다. 한국 역시 인구 감소, 고령화, 에너지 구조 변화 등 기반 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에 도달해 있다. 더 이상 속도 중심의 축조만으로는 다음 세대의 무대를 보장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국의 ‘빛’은 여전히 강렬하다. 민주주의의 성숙, 시민사회 참여 확대, 문화 콘텐츠의 세계적 영향력, 기술 혁신의 연속성 등은 과거 문명과 확연히 다른 점이다. 
피라미드가 완성과 동시에 멈춰버린 정적인 유산이라면, 한국은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거듭하는 움직이는 문명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피라미드 문명의 교훈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권력과 자원이 한 지점에 몰렸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지, 과도한 동원이 어떤 사회적 피로를 남겼는지,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지 않은 문명이 어떤 쇠퇴를 겪었는지 그 거대한 돌덩이들은 오늘의 한국에게 조용히 묻고 있다.

 

한국은 더 이상 성장만을 목표로 한 국가가 아니다. 이제는 분배의 정의, 삶의 균형, 문화적 성숙, 지역의 다양성, 지속 가능한 미래라는 새로운 설계도를 마련해야 한다. 고대 이집트가 거대한 피라미드를 남겼다면, 한국은 사람 중심의 문명을 남길 수 있다. 
과거 문명의 유산을 거울 삼아 한국의 빛을 더 넓고 고르게 비추는 것이 우리의 다음 과제가 될 것이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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