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 지역따라 신체, 정신 건강 격차

지역이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
한국 사회의 신체·정신 건강 격차, 어디까지 왔나
대한민국은 평균 기대수명과 의료 접근성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역에 따른 뚜렷한 건강 격차가 존재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촌, 동부와 서부의 차이는 단순한 생활환경의 차이를 넘어 신체·정신 건강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디에 사느냐’가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를 좌우하는 현실은 이미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통계청과 보건복지부 자료를 종합하면 수도권 거주자의 기대수명은 비수도권보다 길고, 만성질환 관리율 역시 높다. 반면 농어촌과 산업 전환이 더딘 지역에서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고, 조기 사망 위험도 상대적으로 크다.
의료기관 접근성의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다. 대형 병원과 전문 의료진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지방의 중소도시나 농촌 지역은 응급의료 체계조차 불안정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정신 건강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우울증, 불안장애, 알코올 의존 문제는 농촌과 고령화 지역에서 더 높게 나타나지만,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정신건강 인프라는 부족하다.
특히 독거노인이 많은 지역일수록 사회적 고립과 우울감이 누적되지만, 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할 지역사회 시스템은 취약하다. 정신 건강 문제는 개인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에도, 지역에 따라 방치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건강 불균형은 다시 지역 격차를 고착화한다. 건강이 악화되면 노동 참여가 줄고, 소득 감소와 빈곤으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든다.
결국 지역 소멸과 인구 유출, 고령화 심화라는 사회적 문제로 확장된다. 건강 격차는 단순한 보건 문제가 아니라 지역 경제와 공동체 존속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다.
해결의 출발점은 의료 자원의 공정한 배분이다.
지역 공공병원 확충과 필수의료 인력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 단기 파견이나 인센티브 중심 정책을 넘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근무·주거·교육 여건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또한 원격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해 만성질환 관리와 정신 건강 상담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신 건강 영역에서는 지역 기반 예방 시스템이 중요하다. 보건소, 복지관, 마을 단위 네트워크를 연결해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하고, 상담과 치료로 연계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건강은 병원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거, 교통, 일자리,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 ‘생활 환경’ 전반을 개선하는 지역 맞춤형 건강 정책이 필요하다.
지역 간 건강 격차는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 아니라 정책 선택의 결과다. 이제는 평균 수치가 아닌 지역별 삶의 질을 기준으로 건강 정책을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건강한 지역이 늘어날수록 한국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도 함께 높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