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소풍이 사라졌다

소풍과 축구가 사라진 학교
사고 위험과 민원이 만든 ‘조용한 운동장’
나약한 학생은 늘고 있다
봄이면 교실을 나와 자연 속으로 향하던 소풍, 점심시간이면 흙먼지를 날리며 뛰놀던 운동장 축구가 학교 현장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대신 학교 일정표에는 ‘안전교육’, ‘생활지도’, ‘대체 프로그램’이라는 단어가 늘었고, 운동장은 조용해졌다.
배경에는 사고 위험에 대한 과도한 우려와 학부모 민원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예전에는 학기마다 소풍이나 체험학습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사고 발생 시 책임 문제 때문에 아예 기획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체육 시간 역시 축구나 피구처럼 접촉이 많은 종목은 점점 줄고, 스트레칭이나 이론 수업으로 대체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일부 학교에서는 ‘공 사용 금지’, ‘운동장 뛰기 제한’ 같은 내부 지침을 운영 중이다.
학부모 민원은 학교의 판단을 더욱 위축시킨다. 작은 찰과상에도 항의가 이어지고, 담임 교사나 학교 관리 책임을 묻는 요구가 잦아지면서 학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게 되었다.
한 중학교 교감은 ‘학생 안전을 지키려다 보니 결국 활동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민원도 없다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학생들의 신체·정서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운동과 야외활동을 통해 배우는 협동심, 인내심, 갈등 조정 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육교사들은 ‘넘어지고 부딪히며 배우는 경험이 사라지면서 작은 실패에도 쉽게 좌절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를 ‘과잉 보호의 역설’로 설명한다. 위험을 완전히 제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 위험을 판단하고 감당하는 능력을 기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교육학 교수는 ‘안전은 중요하지만, 모든 위험을 차단하는 방식은 아이들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며 ‘통제된 범위 내의 도전과 실패 경험이 오히려 장기적인 안전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한국 학교의 위축은 두드러진다.
일부 국가에서는 경미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학교가 아닌 사회 전체가 분담하는 구조를 마련해 교사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사고 발생 시 책임이 학교와 교사 개인에게 집중되면서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문화가 굳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제도 개선과 인식 전환을 동시에 제시한다.
첫째, 학교 안전사고에 대한 명확한 책임 기준을 마련해 교사가 교육 활동을 위축 없이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학부모와 학교가 완벽한 무사고가 아닌 ‘건강한 성장’을 공동 목표로 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운동장이 다시 아이들의 웃음과 함성으로 채워질 수 있을지, 소풍이 다시 교육의 일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우리 사회가 안전과 성장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멈춰 세운 학교가 오히려 아이들을 더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